모네_양산을 쓴 여인
파란 하늘, 바람이 부는 초록 초록한 언덕 위에 휘날리는 면사포 쓴 여인을 아마도 화가는 올려다보고 있었을 듯싶다. 화가는 자신의 눈을 낮은 곳에 두어 그림 속 여인이 돋보이게 했다.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그렸으니 실내에서 생각만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인의 옷맵시와 신비로운 자태를 보아서는 전문 모델인 것 같긴 하지만 그 뒤로 한 소년이 오도카니 서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까지 담아낸 것을 보면 세 사람은 친분이 두터운, 즉 가족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1875년 모네가 사랑하는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을 그린 ‘양산을 쓴 여인’이다. 지난겨울 파리에 가기 전부터 오르세미술관에 가면 꼭 감동하고 와야지 마음먹었던 그림이었다. 7일 동안 파리에 있으면서 오르세미술관을 두 번이나 가서 두 개의 ‘양산을 쓴 여인’을(오르세미술관 작품은 여인의 오른쪽과 왼쪽 모습을 그린 두 점의 작품이었고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보았지만, 안타까운 건 내가 정말 보고 싶어 했던‘양산을 쓴 여인’은 아니었다. 모네의 그림은 응당 오르세에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내가 보고 싶었던 ‘양산을 쓴 여인’은 워싱턴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던 것.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모델과 구도, 붓터치. 하늘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같은 시기에, 같은 여인을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 보니 워싱턴국립미술관 작품은 1875년에 그렸고, 오르세의 두 작품은 모두 1886년에 그렸다. 11년의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 차이, 오르세 작품은 부드러운 붓터치로 하늘과 언덕 그리고 여인의 모습을 조금 뭉개듯 표현했다면, 워싱턴국립미술관 작품은 눈부시게 화려한 하얀색 원피스에 푸른 하늘이 덧입혀져 있는 모습을 조금은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어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인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워싱턴국립미술관 작품과 오르세미술관 작품들은 11년이라는 시간 차이뿐 아니라 그림 속 모델도 다르다. 워싱턴국립미술관 작품은 모네의 첫 번째 부인인 까미유와 아들 장을 그린 것이고, 오르세의 작품들은 두 번째 부인 알리스의 딸(의붓) 수잔느를 왼쪽과 오른쪽 보이는 모습을 달리하여 그렸다. 모네는 왜 수잔느를 까미유와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포즈로 그렸을까? 그리고 또 왜 얼굴을 흐릿하게 그렸을까? 기억이란 그렇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 자신에게 모든 것을 걸고 함께 했던 까미유, 고통 가운데에서도 짧았던 그 행복의 순간. 시간은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앗아가지만, 힘들었던 쓰라린 고통의 기억을 잊게 만들고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만을 남겨준다. 모네는 그 행복했던 까미유 그리고 아들 장과의 순간을 잊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추억의 그곳에 수잔느와 함께 가서 다시 그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기억 속에 까미유는 지금 그곳에 없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로의 재현 속에 모네는 까미유를 보았지만, 그 모습이 수잔느임을 알기에 누군지 모를 얼굴로 그리고 말았을 것 같다. 여기까지 보면 모네는 멋진 사람이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로맨티시스트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우리에게 갑작스러운 어퍼컷을 날리기도 한다. 모네는 까미유가 아팠을 때부터 알리스와 정분이 있었고 그사이에 아들까지 있었을 거라고 한다. 게다가 까미유가 죽고 알리스의 남편 에르네스트까지 죽자, 그다음 해에 바로 재혼을 했다고. 알리스의 딸을 보며 까미유를 추억하며 그리워했을지 모르나 아름다운 그림만큼 아름다운 인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개인사적인 것으로 모네와 알리스를 비난하고픈 생각은 없다. 사랑이 진실하다고 하지만, 정작 까발려지고 나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이 인생 아닐까?
아, 어쩌면 이런 사실은 굳이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 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