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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Oct 27. 2020

평범한 일상의 디테일, 페이메이르 ‘바느질 하는 여인'

페이메이르_바느질 하는 여인_루브르

페이메이르_바느질 하는 여인_루브르 24㎝×21㎝

  매일 아침 7시 침대에 딱 달라붙은 내 몸을 억지로 떼어낸다. 눈꼽을 비비며 샤워를 하고 오늘은 무얼 입을까 잠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이내 대충 옷을 걸치고 아침을 먹는다. 아이들을 만나는 건 이틀뿐이라 대게 3일은 출근하자마자 커피 한잔과 함께 컴퓨터를 켜고 오늘의 사건 사고를 잠시 훑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곤 온종일 컴퓨터에 앉아 아이들의 학습 진도를 체크하고, 다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문자를 하고, 기계적으로 온라인수업을 준비하며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한다. 뭔가 새로운 것 없는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다. 큰 고난이나 시련이 닥치고 나서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소한 일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곤 하지만, 사실 그것도 잠시뿐. 내 인생에서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곳은 어느 한 곳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재미없는 평범한 하루의 순간을 너무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이 있다. 바로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 페이메이르의 ‘바느질하는 여인’. 단정한 머릿결에 곱디고운 손으로 꼼꼼히 바느질하는, 이마가 동그란 한 여인을 그린 그림이다. 얼핏 보면 새로운 것도 없고 그냥 심심해 보이는 그저 그렇고 그런 그림이다. 하지만 명화란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쉽게 보여 주지 않는 법이니, 잠시만 멈춰서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떠보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여인의 단정함이다. 머리를 곱게 빗어서 묶었다. 바느질에 집중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별것 아닌 듯하면서도 관람자인 나를 그림에 집중하게 한다. 그런데 그림이 가로 24센티미터 세로 21센티미터로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림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한다. 페이메이르는 실 한 올까지도 보이도록 섬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은 명암의 대비가 크지 않아 장면이 극적으로 보이지 않고 그래서 자칫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마치 잔잔한 물결 위에서 뱃놀이하듯 평화롭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몸을 살짝 숙이고 바느질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은 숨소리마저도 조심조심 내뱉게 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림을 집중해서 보게 한다. 그가 입고 있는 옷에도 눈길이 머문다. 하얀색 레이스가 달린 노란색의 상의를 입고 있다. 짙은 노랑이 아닌 파스텔 색조의 노란색이다. 페이메이르 대부분 그림이 창문가에서 그려졌던 걸 생각해볼 때 바느질 하는 이 여인도 창문가에서 은은히 들어오는 햇살 아래 앉아있지 않을까?‘공기의 질감’까지 표현했다는 페이메이르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바느질하는 그녀의 손을 보자. 오른손으론 실 끝을 지그시 누르고 왼손으로 실을 당기고 있다. 얼마나 주의 깊게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는지 입을 지그시 다물었고 두 눈은 온통 두 손끝을 향해있다.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도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게 되고 바느질의 고요한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 가게 된다. 그림의 어느 곳 하나도 버릴 데 없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림이다.

  페이메이르의 디테일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페이메이르는 그림을 그리는데 카메라의 원조 격인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했다고 한다. 렌즈를 통해 영상이 반대편에 맺히면 그것을 따라 그리기를 하는데, 카메라를 사용하다 보니 인간의 눈으론 보기 힘든 것도 그릴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그리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다른 화가에 비해 페이메이르의 작품은 적은 편이다. 페이메이르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작품은 30~35점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4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탓도 있겠지만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하여 섬세함과 디테일을 살리다 보니 많이 그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2020년의 내 평범한 일상에 카메라를 들어 기록을 남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오후 5시 퇴근. 곧장 집으로 가 침대에 잠깐 쓰러진다. 조금 후 기운 차리고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한다. 그러다 저녁을 먹고 나만의 공간인 베란다로 나가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혹 그것마저 지겨워지면 아무런 재미도 없는 TV를 켜놓은 체 멍하니 앉아 있곤 한다. 무엇 하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순간이 없다. 

  그러나 그런 일상이 문제일까? 사실 ‘바느질하는 여인’의 순간도 페이메이르가 따뜻한 순간으로 그려내지 않았다면 특별하게 남아있을 법한 이유가 없다. 평범한 일상을 따뜻한 빛이 비치는 순간으로 그려낼 마음의 눈과 여유,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일지 모른다.  



ps : 카메라에는 심도가 있는데, 초점을 맞춘 부분은 선명하게 나오고 그 이외의 부분은 초점에서 멀어질수록 흐릿하게 나온다. 페이메이르의 ‘바느질하는 여인’도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했기 때문에 선명하고 흐려지는 부분이 있다. 어디에 초점을 맞췄을지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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