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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Oct 22. 2020

오르락내리락 산새소리에 비로소
낮잠이 흡족하다

소당 이재관_오수도

소당 이재관_오수도(午睡圖)_호암미술관

  하늘 높이 해는 떠 있고 찌는 듯한 더위에 저고리 앞섶을 풀어헤칠 수밖에 없는 그런 더운 여름날의 오후. 이런 날은 그냥 시원한 대나무 돗자리에 팔베개하고 누워 기분 좋은 꿈 한 자락 꾸고 일어나면 좋겠다만, 어찌 우리 삶이 그럴 수 있는가? 선풍기 돌아가듯 뱅글뱅글 쉼 없이 움직여야 적은 돈이라도 통장에 들어오고, 또 그래야 가족들에게 맛난 거 하나라도 사 줄 수 있는걸. 

 위의 그림은 소당 이재관이 그린‘오수도(午睡圖)’다. 요즘같이 더운 여름날 소나무가 파라솔처럼 그늘을 만들어 주는 기와집에서 낮잠을 즐기는 한가로운 선비의 모습을 그렸다. 마당 한쪽 편 소나무 옆으로는 학 두 마리가 날라와 놀고 있고, 반대편에선 선비가 일어나면 마실 찻물을 동자가 끓이고 있다. 당장 그림으로 들어가 누워있는 선비를 그림 밖으로 쫓아내고 내가 저 자리에 누워 낮잠 한숨 잘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선비는 책을 기대고 자리에 누워 여름날의 낮잠을 즐기고 있는데, 많이 풀어 헤친 것은 아니지만 저고리의 앞섶이 풀어 헤쳐져 있는 것을 보아 어지간히 더운 날인 듯하다. 왼쪽 소나무 아래 마당에는 학 두 마리 날아와 노닐고 있는데 선비의 시선은 학에게 있지 않고, 오른쪽 바위 아래에서 쪼그리고 앉아 찻물을 끓이는 동자에게 향하고 있다. 아무래도 선비에게 학은 늘 곁에 있었던 듯하다. 학 두 마리는 안중에도 없고 ‘이제 잠에서 깨었으니 어서 차 한 잔 내어 오너라.’하며 동자에게 눈짓으로 채근하고 있다.

  선비, 학 그리고 소나무 등의 섬세한 표현이 어우러져 더운 여름날의 한가로움을 느끼게 한다. 참 잘 그렸다, 싶다가도 한참을 자세히 보다 보면 어딘가 좀 어색하기도 하다. 오른쪽 바위가 지붕과 기둥을 뚫고 집 안으로 들어와 있는 모습이 그렇다. 어떻게 저런 집을 지을 수 있나 싶기도 하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이상적인 선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함인가 싶어 내 눈의 어색함을 자연스러움으로 넘겨본다. 

  낮잠이라는 소재도 좋고, 그리 부유해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의 불편함이 없고 도(道)를 즐기는 안빈낙도의 삶이 보여 내 방 한쪽 구석에 걸어두고 편안하게 감상하기에 좋은 그림이다. 

    나의 말년은 어떠할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림 속 선비처럼 책을 베개 삼아 더운 여름날 선풍기 하나 켜놓고(그래도 더우면 부채질이나 하면서) 낮술에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 아내가 내려주는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싶다. 너무 큰 꿈이라고? 나 또한 아내에게 그럴 테니, 아내 또한 그러지 않을까? 


ps : 코로나19로 어느 때 보다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작은 전시회들은 꾸준히 열리고 있고, 7월 22일부터 국립박물관과 도서관이 조금씩이지만 관객을 맞이한다고 한다. 마스크 쓰고 사람들 붐비지 않는 곳으로 찾아다니며 조심스럽게 이 여름을 보내보자.(2020.07.24) 


  ■ 작가소개

이재관은(1783~1837)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집이 가난하여 그림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했다고 한다. 무관집안이었기에 따로 그림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나 노력과 천부적 재능으로 그림의 일가를 이루었다 평가받고 있다. 조희룡의 「호산외사」에 보면  산수, 인물, 영모, 초충, 어해, 불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 두루 능했는데, ‘특히 실물과 꼭 같게 그리는 초상화에 뛰어나서 위 아래로 백년 사이에 이런 그림은 다시 없었다.(尤長於傳神寫照 上下百年無此筆也)’할 만큼 초상화를 잘 그렸다고 한다. 1837년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사한 공으로 등산첨사(登山僉使)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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