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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Oct 17. 2020

구름 걸린 나뭇가지 담백한 기운이 머물고

강상조어도_강세황

구름 걸린 나뭇가지 담백한 기운이 머물고 더운 기운 피어오르는 산허리 더욱 푸르네

  오래전부터 나이 들면 어디에서 살까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도 서른 초반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 보니 경기도에 올라와 대도시에 살고 있지만,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이웃도 알 수 없는 딱딱한 콘크리트 벽, 아파트가 즐비한 이런 곳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이면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볼 수 있고, 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을 수 있는 산이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다. 

  언젠가 아내에게 ‘푸른 바다와 잔잔한 호수 그리고 시원한 산이 있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라고 말하니 원룸을 얻어줄 터이니 원하시는 대로 하라고 했던가. 언제는 술 마시며 연구회 형님에게 말하니 같이 가잔다. 그 얘기를 아내에게 또 전하니, 그럼 투룸을 얻어서 둘이 살라고. 해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런 꿈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선생님 꿈은 말이지. 멀리 바다를 보면서 말이지. 소주 한 잔 들이켜는 거야. 어때 선생님하고 어울리지 않니?”

그럼 해마다 다른 아이들인데도 이렇게 똑같이 답한다.


  “선생님 알콜중독자 돼서 바다에 빠져 죽는 거 아녀요?”                                  

이정 <한강조어도> 국립중앙박물관

  주변 사람들이 안 믿어도 내 꿈은 진짜 그렇다. 우리 아이들만 다 키우고 나면(둘째 열아홉 살 되면)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내려가 작은 열린 공간 마련해서 기도도 하고, 차 한 잔 술 한 잔 나누고, 책도 읽으면서 그렇게 유유자적하며 지낼 거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우보(雨步)’라 지을 거다. 

  이런 내 마음을 쏘옥 담은 그림 한 점이 있다. 바로 강세황의 ‘강상조어도’다. 조선 시대 많은 화가가 ‘조어도’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난 강세황(김홍도의 스승으로 당시 시문서화 사절로 꼽혔다. )의 ‘강상조어도’가 가장 마음에 든다. 왜 이 그림이 좋을까? 나옹 이정의 ‘조어도’와 비교해서 감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정은 꾸덕꾸덕한 갈필법(물기 없는 붓에 먹을 묻혀 그리는 필법)으로 차가운 겨울날 고기 잡는 모습을 그렸다. 그래서 제목도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다. 유유자적하기보단 제 뜻을 세우고 어려운 시절을 감내하는 그런 느낌이다. 잔뜩 힘이 들어가 있고 문기(선비로서의 기상)가 서려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강세황의 ‘강상조어도’는 온아하고, 은은한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있다. 

  여름날 잔잔한 강 위에 배 한 척 띄어놓고 한가로이 고기 잡는 모습을 습윤한 필묵법으로 부드럽게 그렸다.(미법산수화,미점을 사용하여 비가 온 듯한 안개 낀 자연 묘사를 효과적으로 한다. ) 원경인 먼 산은 푸르름이 가득해 보이고, 중경인 산 아래론 물안개도 피어오르고 산 중턱에는 탑이 보이는 것이 아마도 산사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오른쪽 산 아래에는 나무들 사이로 지붕만 보이는 몇 채의 집도 있다. 그리고 근경에는 먹물을 가득 담은 나무와 배 앞머리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보인다. 

  내가 살고 싶은 그런 곳이다. 과함도 없고 부족함도 없다.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하는 그런 모습이다. 대게 ‘조어도’의 주인공으론 강태공과 엄광을 염두에 두고 그리는데, 강태공과 엄광의 삶은 정반대였다. 강태공은 어부 생활을 하다 제나라 문왕(文王)의 스승이 되어 무왕(武王)때 전쟁을 도와 승리로 이끈 인물이고, 엄광은 부춘산 동강(桐江)에서 고기를 낚으며 살았는데 광무제의 부름도 거절하고 어부 생활을 즐겼다. 

  이 그림 속 주인공은 강태공일까, 아니면 엄광일까? 이정의 ‘조어도’였다면 강태공, 강세황의 ‘강상조어도’는 엄광이지 싶다. 입신양명도 좋지만, 난 내 삶이 쫓기지 않고, 무엇하나 거리끼는 것 없이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가는 그런 인생이었으면 한다. ‘꿈’이라 할 수 있지만 못 다가갈 그런 ‘꿈’은 아니지 싶다.

  이제 내 나이 마흔다섯.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얼마만큼인지 모르겠지만, 나이 들었다고 생각되는 그때 내 얼굴에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띠었으면 좋겠다.(이덕무의 ‘선귤당농소’에서)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도 없이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옆에 더불어 삶을 논하고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는 벗이 있으면 더 좋겠다. (그 벗이 아내는 아닐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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