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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Oct 17. 2020

손가락 끝이 서로 닿지 않아서

대성당_로댕

지난 파리 여행에서 있었던 일. 

파리의 소매치기가 아내의 핸드폰을 감쪽같은 솜씨로 가져갔다. 지하철 환승장에서 정말 잠깐 정신 줄을 놓았을 뿐인데. 정말 그 명성 그대로였다. 하루의 끝 무렵에 그래서인지 피곤과 짜증이 몰려왔다. 너무 늦은 날이라 그다음 날 두 곳의 경찰서를 돌고 돌아서 도둑맞은 걸 신고할 수 있었고, 한국에 돌아와 여행자보험에서 받은 보상금을 받았지만, 여행의 씁쓸한 기억 하나로 확실한 도장을 찍은 셈. 그나저나 정말 귀신 같은 손이었다. 정신 줄을 조금 놓았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 그걸 가져가다니. 어찌 보면 대단한 손 아닌가? 우리에게는 작은 불행이었지만, 소매치기 처지에서는 ‘이번에도 예술이었어’ 자화자찬할 만한 솜씨! 솜씨라는 말이 손의 재주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파리 소매치기들의 솜씨라고 쓰는 데 하나도 어색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파리에 또 하나의 손이 있다. 조각사에서 가장 뛰어난 솜씨를 가진 로댕의 ‘손’. 

로댕박물관에서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당연히 작품의 이름은 ‘손’ 혹은 ‘연인’이라 생각했다. 로댕이 살았던 낭만주의 시대를 고려한다면 당연히 연인이 두 손 마주 잡는 그 찰나의 순간을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연인의 설렘과 짜릿함을 떠올리며 나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그런데 작품의 제목은 <대성당>.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도무지 수긍할 수 없었다. 자세히 보고 또 보고, 계속 보며 이 두 개의 손이 ‘대성당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았다.


로댕이 원래 이 작품을 만든 것은 분수의 장식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활모양의 두 손 사이로 물이 솟아오르도록 계획했다하지만 분수 장식 계획이 무산되면서 단순한 구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성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하여 고딕 예술의 극치인 노트르담대성당에서 그 이름을 따 와 대성당이라고 했단다.  


‘성스러움’ 때문에 ‘대성당’이라 이름 지었다지만, 내겐 다른 것이 보였다. 

두 오른손은 서로를 향해 내뻗고 다시 자신의 가슴 쪽으로 손을 살짝 오므리며 마치 손을 맞잡을 것처럼 하고 있다. 손가락은 끝은 닿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두 손 사이에서 역동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은 ‘손’일 뿐이지만, 두 오른손이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의 이성을 초월한 강력함과 거대함이 느껴진다. 이런 걸 표현할 만한 단어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칸트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에서숭고’와 ‘아름다움’을 구별하고 있다. 


밤은 숭고하며낮은 아름답다.

숭고함은 감동을 주고아름다움은 매료시킨다.

숭고한 성질은 존경을 환기하고아름다운 성질은 사랑을 환기한다

     

‘대성당’은 우리에게 두 손의 아름다움이 아닌 ‘숭고’, 즉 감동과 존경을 느끼게 한다. 두 손이 닿았다면 느꼈을 촉감의 아름다움에서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지향해야 할 ‘숭고’를 느끼게 했다. 그래, 그렇다면 ‘숭고’의 상징, ‘대성당’ 그리 이름 붙일 만하다.

로댕은 이 작품 말고도 ‘손’을 소재로 여러 <대성당>을 만들었다. 각각의 작품이 주는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문득 로댕은 어떤 작품을 자신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생각했을까 궁금해진다. 로댕의 다른 <대성당>과 비교하면서 각각의 작품들이 지닌 그 ‘숭고’를 느껴보고 싶다. 

그나저나 내 두 손은 무엇을 담그고 있을까? ‘숭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매치기 정도의 예술적인(?)‘기술’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내에게 들키지 않고 무언가 스리슬쩍 할 수 있다면?      추신 옆의 작품도 파리 로댕미술관에 있는 로댕의 <대성당>이다여러분은 무엇이 느껴지는가혹 성스러움이나 숭고 이런 것이 느껴지지는 않는가앞의 <대성당>과 비교하여 읽으면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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