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으로 메모부터
리갈 패드(Legal Pad)
(*리갈 패드는 원래 서양의 법조계, 예를 들어 변호사, 판사들이 즐겨 쓰는 노트라 하여 법조계 노트라 불렸다.)
최근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을 2번 정독해서 읽었습니다. 이 책은 필 나이트가 20대 중반이었던 1963년, 나이키 역사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부터 주식 상장을 하는 과정 20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말 흥미롭고 가슴 뛰는 이야기 덕분에 550쪽에 가까운 벽돌책이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이틀에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서전을 쓰기 위해서 메모를 하란 말인가요?
(소제목으로 적고 보니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사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나이키 창업 스토리, 자서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책에서 잠시 등장한 리갈 패드에 대한 이야기죠.
필 나이트에게는 좋은 습관이 많은데요. 어릴 적 달리기를 좋아해서 육상선수가 되었고, 매일 뛰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책의 첫 부분도 달리기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힘들다고 조금 투덜대기는 했지만, 그리고 바로 달리기를 합니다.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 남들보다 일찍 나와 앓는 소리를 하며 다리를 뻗고 기지개를 켜고는 차디찬 길바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왜 항상 시작은 이렇게 힘든 걸까?
또한 책도 많이 읽습니다. 자서전을 비롯해 역사에 대한 책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다독가입니다. 역시 창업가들은 독서를 좋아하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메모를 합니다. 필 나이트는 아이디어가 떠 오를 때나, 회사 문제를 고민할 때 황색 리갈 패드에 메모를 했습니다. 메모를 하며 고민한 문제를 하나씩 천천히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렇다면 우리도 메모부터 가볍게 해 볼까요?
처음에는 무언가를 기록하겠다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메모를 하는 것보다 그냥 오늘의 생각을 남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메모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볍게 다양한 메모 방식을 도전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스프링 수첩 > 노트형 수첩 > 플래너 > 스마트폰 어플(에버노트, 노션)
저는 이런 식으로 노트 쓰기를 발전해왔습니다. 단계형으로 발전시켰다기보다는 병렬적으로 다양하게 직접 사용하며 배운 메모 법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메모를 위한 행위에서, 지금은 삶을 저장하는 행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욕심으로 열심히 쓸 수도 있겠지만,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포기하기도, 지치기도 쉬우니까요.
가볍게 노트 별로 말해보자면, 우선 노트마다 장점이 다릅니다. 스프링 수첩은 정말 가벼운 생각을 적기에 유용합니다. 쓰다가 마음에 안되면 쓱 찢어서 버릴 수도 있고, 가격적인 부담도 거의 없어서 자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가볍게 사라지는 만큼 무게 있는 생각을 적기는 어렵죠.
노트형 수첩은 생각을 보관하는데 더 유용합니다. 하나로 일 년 동안 쓸 수도 있고, 분야별로 구분해서 작성할 수도 있습니다. 잘 못쓰더라도 찢어서 버릴 수 없으니 더 조심해서 생각을 담아 적습니다.
플래너는 스프링과 수첩형을 혼합한 시스템입니다. 찢어서 버릴 수도 있고, 바인더형 플래너는 종이를 추가해서 작성할 수도 있죠. 늘리고 줄이는데 간편하지만, 확실히 가격은 더 비싸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요즘 누가 아날로그 플래너를 쓰죠?라고 반문하실 분들도 분명 있으실 텐데요. 물론 에버노트나 메모 어플 그리고 노션과 같은 툴을 사용해서 디지털 메모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언제 서든 생각을 기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지금 적는 이 글도 처음에는 에버노트에 초안을 적은 다음, 브런치에 옮겨서 퇴고를 통해 작성된 글입니다.
<슈독>의 책에서 필 나이트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쉬움을 이야기합니다. 젊은 시절 함께 창업한 친구들과 나누었던 소중한 대화들을 녹음했더라면, 정말 소중한 기록과 추억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짐했습니다. 소중한 순간을 녹음하고, 사진으로 찍고, 지금의 생각을 메모장에 글로 남겨두기로 말이죠. 이것이야말로 순간을 기억하는 완벽한 방법이 아닐까요? 물론 그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이렇게 내가 자신 있는, 반드시 기억하고 싶은 것부터 적어야 합니다. 오늘 대충 끄적인 메모가 10년이 지났을 때는 오늘을 기억하게 해주는 소중한 추억이자 글감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자신 있게 가볍게 그리고 솔직하게 메모를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