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운동이 하고 싶어 졌습니다.
지난 주말 아들의 축구 경기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축구교실에서 공식적인 축구경기를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빠는 잠시 고민합니다.
“혹시 경기에 나가서 다치면 어떻게 하지?
경기를 하다가 져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싶지는 않은데...”
뭐 이런 걱정들 때문입니다. 한 번에 대답하지 않고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아들에게 축구경기에 나가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왜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는지 의아하게 쳐다봅니다. 그렇죠. 생각해보면 당연히 나가야 하는 것인데 아빠가 괜히 오지랖을 부렸네요.
출전 결정과 동시에 유니폼에 들어갈 등번호를 정합니다.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아빠는 축구의 등번호가 주는 의미도 잘 모릅니다. 아내가 생각한 등번호가 있냐고 묻습니다. 뭐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대답합니다.
“손흥민 선수처럼 7번 어떨까?”
아들은 자기가 공격수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빠는 자신이 공격수를 해 본적이 있는지 잠시 생각합니다.
“내가 공격수를 했던 적이 있던가?”
생각해보니 없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공격수라는 이야기를 하니 신기하기만 합니다. 등번호 1번은 골키퍼, 2번과 3번은 오른쪽 왼쪽 윙백, 4번과 5번은 중앙 수비수, 6번은 수비형 미드필더, 7번은 스타플레이어(손흥민 선수랑 어울리네요:), 8번은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9번은 스트라이커(공격수), 10번은 에이스 마지막으로 11번은 날쌘돌이라고 합니다. 이걸 이제야 알다니 아들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았습니다.(그런데 7번, 9번, 10번은 비슷한 의미 아닌가요;)
결국, 아들은 9번을 선택했습니다.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축구경기가 열리기 이틀 전, 환절기라서 그런지 아들이 기침을 하기 시작합니다. 콧물도 조금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봅니다.
“아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축구경기 못 간다고 할까?”
아들은 또다시 왜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것처럼 빤히 아빠를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네요.
“아빠, 컨디션 100%에요.”
그 어느 때보다 해맑은 모습입니다.
그렇게 축구 경기날은 찾아왔습니다. 아침부터 기침을 하며 축구복을 입은 아들은 어서 가자고 재촉합니다. 작은 경기장에서 조촐하게 열릴 것 같았던 축구경기는 무려 4게임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큰 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덩달아 구경온 처남도 아이들의 축구경기 규모를 보더니 놀랄 정도였으니 말이죠.
등번호 9번 축구복을 입은 아들은 놀랍게도 정말로 공격수였습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맨 앞에서 공을 차면서 뛰어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수비만 했던 아빠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아빠와는 달리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의 경기는 한 게임에 15분씩 총 4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다른 축구클럽의 아이들과 겨루는 경기였습니다. 뭔가 프리미어리그 같은 느낌도 났습니다. 선수인 아이들뿐만 아니라 구경하던 엄마와 아빠들이 더 신나서 목청껏 소리를 지릅니다. 선수인 아이들보다 더 집중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들, 열심히 뛰어야지. 뻥하고 걷어내. 수비수비. 공격공격"
아빠도 운동이 하고 싶어 졌습니다.
신나게 소리를 지르면서 응원하다 보니 15분은 순삭입니다. 아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빠는 어릴 적 축구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빠져있습니다. 잔디구장이 없던 그 시절, 심판도 구경꾼도 없이 우리들만의 경기가 열리던 아주 오래전 그때를 말입니다.
지치지 않고 즐겁게 운동장을 뛰어노는 아들을 보면서 아빠도 문득 운동이 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조기 축구회에 가입해서 축구를 배우고 싶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친구들과 모여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뛰어다니고 싶습니다. 삶도 그렇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