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는 것에 대하여
문득 저녁을 먹으면서 직장생활에 필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를 혼자서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가벼운 결론은 이렇습니다.
버티는 것이 1번.
성과를 내는 것이 2번.
욕심을 버리는 것이 3번.
버티는 것에 대하여
버티는 것은 자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엔젤라 덕워스의 <그릿>을 보면 이런 항목이 나오죠.
그릿 척도의 열정 항목
1. 멀리 목표를 두고 일하고, 이후의 삶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확고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정도.
2. 단순한 변덕으로 과제를 포기하지 않음.
그릿 척도의 끈기 항목
1. 의지와 인내심의 정도. 한 번 결정한 사항을 조용히 밀고 나가는 결단력.
2. 장애물 앞에서 과업을 포기하지 않는 성향. 끈기, 집요함, 완강함
<그릿> 113쪽_앤절라 더크워스
이 책을 읽으면서 90퍼센트는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은 건방지게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성공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무엇이든 조금만 더 버티면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생각한 어렴풋한 성공은 무엇이었을까요? 승진이었을까요?
졸업 후 15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단체생활과 조직에 적응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에는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미련하게 버티는 것이 맞을까?, 조직에 순응하는 삶이 성공한 삶일까?"
이런 생각과 동시에 그저 버티는 것이 무용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은 자연스레 행동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단순히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라고요.
성과를 내는 것에 대하여
최근 자서전 전문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이 지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서전을 읽고 있습니다. 역시나 700쪽이 넘는 벽돌책입니다. 최근 <서양미술사>와 <아트 인문학 여행> 등에서 레오나르도를 자주 만나면서 무언가 많이 친해진(?) 그런 느낌입니다.
레오나르도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에 비해 인정을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갔던 산드로 보티첼리가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것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이런 문단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다른 이유,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그는 구상을 현실화하는 것보다는 구상 자체를 좋아했다. 스물아홉 살의 레오나르도는 현재에 집중하기보단 미래에 의해 쉽게 산만해졌다. 그는 근면함을 훈련받지 못한 천재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120쪽_월터 아이작슨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레오나르도는 수많은 생각과 작품들이 있었지만, 결국 성과를 낼 수 있는 끝맺음이 부족했던 것이 보티첼리에게 밀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그 당시의 다양한 요소들도 크게 작용했겠지만요.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냉정한 분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노력과 과정을 강조하지 말고, 숫자로 결과를 보여줘."
욕심을 버리는 것에 대하여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밤늦게까지 소중한 시간을 일을 하고 있는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월급을 받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뭔가 부족합니다. 월급은 열심의 결과가 아니라 모두가 비슷하게 받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직장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일까? 약간은 정답에 가까웠지만, 요즘은 직장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일을 하는 시기는 아니잖아요. 물론 직장 내에서 원활한 생활을 하려면 동료 및 상사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분명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제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천천히 생각해봤더니, 문득 답이 떠올랐습니다. 그건 바로 제 '욕심'이었던 것이죠. 승진에 대한 욕심, 인정에 대한 욕심 그리고 스스로에 잘난 사람이고 싶다는 그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나 스스로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그 욕심부터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욕심 속에 가려진 (직장에서)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