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세 가지 꿈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
어릴 적부터 제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단 한 번도 다른 장래희망을 적은 기억이 없습니다. 왜 저는 어린 나이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을까요? 아마도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부모님의 기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 가장 인정받는 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이 되자 현실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내 장래희망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의대를 갈 수 있을까?', '지금 나의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을까?'와 같은 질문들은 수시로 떠 올랐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에서 생겨납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부족과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한 의구심들이 질문의 근원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꿈을 향해 걸어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죠.
두려움을 외면하며 그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유난히도 어려웠던 첫 번째 수능시험을 보고, 제 자신이 얼마나 싫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꿈이 멀어져서 슬펐고 내 인생의 첫 번째 실패가 서러웠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받아들일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고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이번엔 수능 시험이 어려워서 긴장을 많이 했을 수도 있어. 다시 한번 해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 내 꿈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잖아.
저는 다시 도전했습니다. 삶은 역시 재수니까요.
재수하면서 고등학생 때 했던 질문은 사라졌습니다. 공부할수록 꿈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의대에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그 벽을 넘지 못하였죠. 대신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이 내 꿈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친구들보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들이 '의사'라는 꿈을 만들어낸 것이죠.
그리고 두려움이 생겨나면 목표를 향하는 길이 즐겁기보다 고난의 길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즐겁게 하고 싶은 꿈이 아닌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꿈이 되는 것이죠.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것을 하려고 할까?'라는 질문이 자신을 찾아오는 순간, 꿈은 두려움의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꿈으로 향하는 길이 두렵다면 실패할 확률은 당연히 높아지겠죠? 1년간의 재수생활 후에 어릴 적 꿈을 접었습니다. 아직도 가끔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그때는 재수생활 동안에 이루지 못한 목표를 다시 도전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브런치 글 중에 <생도를 찾기 위한 '기본'은 무엇일까요?>라는 글에 제가 공군사관학교를 가게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수 시절 옆자리에 앉아있던 고등학교 동창의 권유 덕분인데요. 결국 친구 따라 사관학교에 가게 됩니다.
사관학교를 가면서 '인생은 어쩌면 노력보다 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동안 단 한 번도 사관학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아주 우연한 기회로 꿈이 크게 변했습니다.
흔히 실패의 반대편엔 기회가 있다고도 말하죠. 의대를 가지 못한 것은 분명 제 인생의 큰 실패였지만, 사관학교에 간 것은 또 다른 기회였습니다.
몇몇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파일럿이 되고 싶어 합니다. 전투기를 타고 높은 하늘을 날거나, 영화 <Catch Me If You Can>의 주인공처럼 전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겠죠.
공군사관학교 입학과 동시에 제 꿈은 자연스럽게 '조종사'로 변경되었습니다. 정적인 의사의 꿈과 동적인 조종사의 꿈으로의 변화는 정말 컸습니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많은 동기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고, 누군가의 선망의 꿈을 향해 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전투기를 조종하는 것, 듣기만 해도 설레지 않으신가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또 다른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비행 사고에 대한 공포입니다. 많은 사람이 여행을 하면서 한 번씩은 생각해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타고 있는 이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에 대한 상상입니다. 실제로 비행 중에 난기류라도 만나면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될까 봐 두려움은 더욱 커집니다.
제가 생도생활을 하는 도중에 2차례의 큰 비행사고가 있었습니다. 공군에서 새로 도입한 F-15K 전투기가 동해상에서 추락한 사고와 에어쇼 도중에 블랙이글 항공기가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분들은 모두 선배님들이었습니다.
비행과 관련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금세 잊히는 기억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행을 하는 또는 비행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순간순간 떠 오르는 가슴 아픈 기억이자 두려움입니다. 사관학교 4년 동안 제 꿈은 조종사였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항상 두려움이 공존했습니다.
4학년이 끝나갈 무렵, 생도들은 조종사가 되기 위한 까다로운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특히 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력검사를 받습니다. <응답하라 1997>에서 서인국도 신체검사에서 시력으로 떨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눈에 대한 시력검사는 더욱더 까다롭습니다. 일반 시력검사, 안압, 굴절률 등 정밀한 눈 검사를 실시합니다.
제 꿈이 간절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두려움이 더 컸던 걸까요? 시력검사 중 굴절률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한 순간에 내 인생 두 번째 꿈도 저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어릴 적 꿈과 20대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 실패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그 즐거움은 바로 두 번째 꿈을 바로 눈 앞에서 보내면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건 바로 '독서'입니다. 바로 코 앞까지 왔던 꿈을 놓쳐버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에 100권 이상을 읽은 적도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 궁금하면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당 분야의 책들의 10권, 20권 또는 그 이상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독서에 대한 즐거움이 생겨났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두려움은 사라지고 즐거움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책을 읽었습니다.
오랜기간 책을 읽다보니,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써 보고 싶었습니다. 글쓰기와 책 읽기는 비슷하지만 많이 다릅니다. 책 읽기가 수동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글쓰기는 더 능동적입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종이나 PC에 끄집어내야만 합니다.
신기한 것은 글쓰기는 즐겁다는 것입니다. 물론 글 하나를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약간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두렵지는 않습니다. 쓰면 쓸수록 조금씩 더 재미있어지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도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좋아서 조금씩 쓰다 보면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꿈은 이룰 수 있을까요?
최근에 <나는 4시간만 일한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의 TED 강연 영상을 보았습니다. <Why you should define your fears instead of your goals, 목적보다 두려움을 정의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입니다.
이 영상에서 팀 페리스는 대학생 때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을 자세하게 적어보고 어떤 것이 두려움인지를 정확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을 제대로 바라보기보다는 피하기 위해서 노력하죠. 제가 하얀 가운을 입는 의사도 하늘을 나는 조종사도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두려움'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꿈의 다른 말은 두려움일지도 모릅니다. 그 두려움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작가가 되기위한 꿈의 두려움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려고 합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면 작가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