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서
여전히 서재방 한 구석에는 <해리포터> 20주년 기념 레고 3박스가 그대로 쌓여있습니다. 3개월 전에 밤늦게까지 기다리며 주문한 레고입니다. 늦은 밤에 결제를 하면서 저 혼자서 얼마나 뿌듯하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아들과 함께 즐겁게 레고를 만드는 그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 레고들은 아직 상자도 개봉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요즘 레고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자기 전에 날마다 보던 레고 팸플릿도 관심에서 멀어졌죠. 대신에 관심사는 넓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선물하면 무조건 레고였는데, 요즘은 미니 특공대와 비행기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아들이 관심을 주지 않자 제가 관심을 유도해 봅니다.
아들, 이게 레고 20주년 기념판이야(혼잣말로, 소장가치가 높은 거지). 이 금색으로 된 해리포터 보이지? 이건 이 상자에만 특별하게 들어있는 거야. 아빠랑 함께 만들까?
이 말에 아들은 잠시 관심을 보이는 것 같더니, 바로 시크하게 대답합니다.
응, 좋아요.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지나고, 심지어는 3개월이 지났습니다. 레고는 분기마다 출시되는데요. 이제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가 되었네요. 기다리다 지친 저는 다시 아들에게 물어봅니다.
아들, 왜 레고를 안 만드는 거야?
그때 생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오네요.
아빠, 나는 어벤저스나 배트맨 레고가 좋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뜨끔했습니다. 해리포터 레고는 아들의 선택이 아니라, 그저 아빠의 바람이었던 것이죠. 아빠의 욕심을 아들의 장난감에 투영한 것입니다. 아빠가 좋아하는(수집하고 싶은) 장난감을 마치 아들도 좋아해서 산다면 그 장난감을 사는 것이 더 아깝지 않다고 생각되었죠. 제 착각이었습니다.
많은 책에서 삶의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을 하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택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부모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아니죠. 하지만 이런 생각을 잊고, 아이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은 네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들이 선택을 합니다. 선택은 나이가 어려도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해리포터 레고 3박스를 집에 두고 다시 레고 가게로 향합니다. 아빠의 사심이 담긴 의견은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서 밖으로 나오지 않게 노력합니다. 아들이 아빠의 생각을 물어봐도 고민하는 모습만을 보인채 섣부른 조언을 해주지 않고요.
아들은 신나게 이쪽저쪽을 오가며 어떤 레고를 살지 행복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어벤저스 시리즈 중에서도 크고 비싸 보이는 레고입니다. 큰 상자를 집어 들더니 혼잣말을 하네요.
이건 좀 비쌀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번엔 자동차 레고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그냥 스쳐가네요. 이제 자동차 레고에 흥미를 보일 나이는 지났나 봅니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가 황금색 손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언젠가 어벤저스 영화 포스터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나 봅니다.
아빠, 이걸로 할래요. 18세 이상이지만 만들 수 있어요.
'18+'라고 적힌 레고를 이미 몇 개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아들은 이 정도는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나 봅니다. 레고를 살 때 나이 구분 표시는 이제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바로 이 '인피니티 건틀렛'입니다. 황금색 손이 무언가 마법의 힘을 보여줄 것만 같은, 아이언맨이 엔드게임에서 손가락을 다시 한번 튕겨서 인류를 구원해낸 그 위대한 건틀렛이죠.
이번엔 아들의 바람대로 아빠의 의견을 더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레고를 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아들은 그동안 만들지 않았던 레고를 만들기 시작하네요. 18+라고 적혀 있는 이 레고를 6살 아이가 혼자서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혼자서 또 뿌듯합니다. 동시에 생각합니다. 역시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은 자녀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것'에 그쳐야 합니다.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아빠도 레고,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