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S.E.S <달리기>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찾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 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윤상의 원곡이자 SES가 리메이크해서 부른 <달리기> 노래 가사의 일부다. 요즘은 옥상달빛이 부른 노래도 인기가 있는 듯하다. 이 노래를 5주 동안 식사시간에 들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관학교는 입학 전에 일정 기간 동안(공사의 경우 5주) 가입교 훈련을 받는다. 가입교? 정식 입학을 위한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시기다. 쉽게 생각하면 오리엔테이션과 비슷하다. 물론 오리엔테이션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가입교 기간 동안 힘든 군사훈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그럼 워크숍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기대했니?) 아무튼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했어도 그 이상의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오히려 모르는 편이 나았을지도.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선물 받은 좋은 옷을 입고, 공군사관학교(이하 공사)로 안내해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즐거운 마음으로 공사로 향했다. 어떠한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두려움보다는 설렘만 가득했다.
아직도 그 첫 번째 날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앞으로 선배가 될 생도들이 사관학교 정문에서부터 교육 장소까지 길게 도열해서 서 있었다. 푸른색 옷을 입은 선배들은 박수를 치면서 밝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심지어 군악대가 연주까지 해주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였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나중에 우리가 첫 후배들을 기다리면서 박수를 쳐줄 때가 되어서야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했다.
Welcome to...
식사를 하고 가입교 기간 동안 입을 전투복을 받았다. 전투복을 손에 들고서 혼자서 생각했다. '왜? 선배들이 입고 있는 멋진 푸른색 옷이 아닌 칙칙한 전투복을 주는 걸까.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살면서 이보다 힘든 경험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가입교 훈련이 시작되었다. 물론 선배들이 입는 그 멋진 옷은 5주간 입을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나름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단체 생활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일주일만 진행되는 캠핑이 아니었다. 몇십 년 동안 가입교 훈련을 받는 선배들이 들어온 <헌시>라는 잠이 확깨는 음악(?)과 아침을 시작했다. 기상과 동시에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절규의 목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그게 가끔은 나이기도 했다. 유난히도 추운 2월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야외에서 점호를 했다. 그 후에는 정신이 깨어나서 나를 따라오기 전에 바로 무엇인가가 시작되었다. 식사를 하러 가면서도 뛰었고, 교육을 받으러 이동할 때는 가능하면 뛰었다.
우리의 이름 대신에 ‘메추리(나중엔 보라매가 된다)’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름을 말할 때도 000 메추리라고 했다. 메추리라는 호칭이 우리를 더 어리바리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처음 접해보는 교육과 군사훈련들은 낯설었고, 쉽게 습관이 되어주지 않았다. 항상 추웠고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허겁지겁 식사를 할 때는 항상 S.E.S의 <달리기>가 흘러나왔다. 이게 우리의 기생가(기수를 대표하는 노래)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이 가사를 들을 때면 무언가 큰 위안이 되었다. "아.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지. 근데 이 노래 우리를 위해 만든 곡인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그 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졌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들도 조금씩 더 생겼다. '함께'라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쉽지만은 않겠다는 느낌도. 하루하루 시간은 일주일처럼 더디게 갔고, 5주간의 가입교 기간은 마치 일 년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훈련을 해주던 교관들이 3학년 선배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 이 사람들이.
5주간의 시간이 지날 때쯤, “5주간의 시간을 1년으로 늘려놓은 게 사관학교 1학년 생활이다.”라고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 이 길이 진정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가.
10년도 더 지나서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가끔 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일부러 그때를 생각한다. 그러면 '이 정도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지.’라는 마음속에 묘한 위안이 찾아온다. 극한의 경험을 일부러 찾아서 할 필요는 없지만, 그 극한을 이겨내 가는 단계에서 한 발자국 성장해가는 것은 맞다. 그 속에서 즐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상 즐기는 게 쉽지 않은 경험들이 더 많다. 그럴 경우엔 그저 버텨내는 것도 방법이다.
<달리기>의 노래 가사처럼 모든 힘든 일에는 틀림없이 끝이 있으니까.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