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 생활에서 후회하는 단 한 가지
나에게 맞지 않는 전공 선택을 3년 동안 후회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관학교에도 전공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떤 전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관학교 생활이 결정되기도 해요.’라고. 동시에 조용히 나만 들리게 혼자서 중얼거린다. "어쩌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죠."
생도 1학년 때는 전공 구분이 없다. 주로 개론을 배운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져서 어떤 과목들을 배웠는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항공우주학개론, 대학수학, 공업수학 등이 떠오른다. 물론 이 기억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일과 중에는 학교('교수부'라 불리기도 한다) 생활, 일과 후에는 생도대(기숙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생활 두 가지로 구분된 삶을 산다. 1학년은 학교 생활보다 3배는 힘든 생도대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학교생활이 더 즐거웠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생도대 생활은 항상 바쁘게 돌아갔다. 저녁 먹고 돌아오면 많은 교육이 있었고, 청소와 여기서 말할 수 없는 특별한 일정이 있었다. 정신 차리고 책상에 앉으면 잠잘 시간이었다. '하루는 왜 이리 짧고 정신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반면에 학교 생활은 여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수업은 1학년끼리만 들어서 선배들이 없었다. 바쁜 생활에 지친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졸았다. 어쩌면 잤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혹시라도 선배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데 졸면 뒤통수가 따가웠다.
잘못된 선택의 시작
많은 선배들은 ‘사관학교 생활은 전공이 결정한다.’라는 말을 조언처럼 때로는 겁주는 것처럼 했다. ‘00 과를 가면 학교를 중간에 나갈지도 몰라.’든지 ‘아! 00과, 너는 이제 졸업했다고 생각해. 축하한다.’와 같은 극과 극의 평가들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나는 사관학교 전공은 10개 정도다. 먼저 크게 이과와 문과가 구분된다. 이 선은 넘어갈 수 없다.(사실 이 선을 넘어가고 싶었다.) 사관학교 시험 볼 때 이과였다면 전공을 반드시 공학으로 선택해야 한다. 공학에서 선택할 수 있던 전공은 항공공학, 우주공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산업공학, 무기 기초학과(화학) 등이 있었다. 문과는 경영학, 국제관계학, 국방학, 외국어학 등이 있었다.
나는 이과였기 때문에 당연히 공학에서 선택해야 했다. 이 인생이 걸린 중요한 선택의 순간, 3명의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2학년, 3학년 그리고 4학년 선배 한 명씩. 지금 생각해도 각 학년의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한 것은 잘한 행동이다. 하지만 왜 더 많은 선배와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을까?
2학년 S선배(국제관계학 전공) : “나는 국제관계학을 전공 선택했는데, 이것도 나름 힘들어. 누구와 수업을 듣는지가 중요하지. 열심히 하는 동기들이 있으면 어디든 힘든 건 마찬가지야.” 나중에 알아보니 국제관계학과는 가장 편한 학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아! 선배, 이런 곳에서 힘든 척을.
3학년 L선배(산업공학 전공) : “우리 학과는 공학 중에서는 그래도 편한 쪽에 속하지. 교수님들도 좋으시고. 하지만 쉽다고 알려진 만큼 경쟁이 치열할 거야.” 산업공학과는 선배 말대로 공학 중에는 그나마 쉬운 학과였다. 처음엔 나도 산업공학을 생각했다.
4학년 K선배(기계공학 전공) : “그래도 우리 학과는 다른 전공에 비해 교수님들이 정말 좋으셔. 최근 몇 년간 성적으로 학교를 나간 사례도 없고, 조종사가 되려면 항공, 우주, 기계공학을 하는 게 도움이 될 거야. 선배는 추천한다.” 아아... 정말 시험을 못 보면 중간에 학교를 나가는구나. 기계공학과는 중간 정도(?) 힘들구나. 교수님들도 좋다고 하시니 이 선배를 믿어보자.
그렇게 나는 높은 경쟁률을 피해 안전한 ‘기계공학’을 선택했고, 그 안일한 선택을 3년간 후회했다. 삶에서는 안전한 선택보다는 후회하지 않을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3년간 전공 시험공부를 하며 새벽마다 생각했다.
실패를 통해 배운 '선택을 잘하는 세 가지 방법'
여전히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많은 책을 읽었고, 실패와 성공의 경험도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선택을 잘하는 방법 3단계'로 정리했다.
1단계 :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스스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싫어하는 것까지.
싫어하는 것은 바로 제외한다. 그다음에 남는 것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다. 이 둘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선택은 언제나 내가 ‘잘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도 선택하면 안 된다. 무조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좋아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면 언제든 싫어질 수 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싫은 것이 된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은 나만의 착각일 확률이 크다. 실제 접해보면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하는 것은 지금까지 잘했으니 앞으로도 잘할 확률이 크다. 그래서 ‘잘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첫 번째다.
2단계 : 배수의 진을 칠 것인가 말 것인가.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서는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뒤를 돌아볼 수 없는 단호한 결의가 생길 수 있도록 ‘단 하나의 길’만 남겨두는 것이 간절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생각을 깨준것이 바로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이다.
당신이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고 당신의 사업 구상에 의구심이 든다면, 당신이 추진하는 사업은 끝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덤비는 도박꾼 기질이라면, 당신의 창업은 사상누각일 가능성이 높다. <오리지널스_45쪽>
애덤 그랜트는 최고의 성과와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벼랑 끝에 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벼랑 끝에 서는 경우에는 불안함 때문에 창의적인 생각과 용기 있는 판단을 내리기가 더 어렵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안정적인 직장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더 좋은 선택을 내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선택을 위해서는 '벼랑 끝 전략'을 쓰기보다 플랜B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의 조언을 충분하게 듣자. 그때 판단해도 늦지 않다. 성급판 판단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3단계 : 글로 적어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머릿속에 가두어두지 말고 밖으로 꺼내야만 한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나 혼자만의 생각일 확률이 크다. 하지만 그 생각들을 꺼내서 적는 순간 객관성이 생긴다. 나는 고민이 생기면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그 문제를 생각하는 성격이다. 머릿속 문제들은 생각과 생각이 연결될수록 더 두리뭉실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럴 때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노트나 PC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감정을 제외하고 사실만 적자. 예를 들어, 다시 전공을 선택한다고 가정해보자.
인기도 : 산업공학 > 기계공학 > 항공공학
난이도 : 항공공학 > 기계공학 > 산업공학
활용도 : 항공공학 > 기계공학 > 산업공학
예상 경쟁률 : 산업공학 > 기계공학 > 항공공학
이 밖에도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등을 적어서 정보를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머릿속 정보는 주관적인 지식이다.
최근에 선택을 할 때는 이 3단계를 반드시 거친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후회 없는 선택을 내리기는 어렵다. 인생에서는 가지 않은 길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내가 걷는 길보다 남들이 걷는 길이 더 쉬워 보인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누구나 내가 가는 길이 어렵다.
선택을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내린 '선택'을 믿고 꿋꿋하게 걸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과 '비교'는 저 멀리 내려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