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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퍼 Oct 06. 2021

술래잡기

도망자? 감시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옷자락이 보인다.. 문을 닫고 들어가면 배가 고파질 때까지 게임에 빠져있는 딸아이 마음을 상상해 보게 된다. 내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명상의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색색이 선명한 해먹이 숲 가운데 나무에 걸려있다. 성큼 걸어가 몸을 눕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지금은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어서 빨리 이 숲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해먹이 걸린 나무를 뒤로하고 오솔길을 따라 잰걸음으로 걷고 또 걸어도 숲을 빠져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아.. 거기 잠깐 누워서 쉬다 올걸 그랬나? 다리도 아프고 피로가 밀려와 이젠 그냥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바스락 소리에 놀라 뒤 돌아보니 상어 이빨 모양 장식이 달린 방망이를 든 사내가 나를 쫒고 있었다. 어깨는 떡 벌어지고 방망이를 든 팔뚝이 내 허벅지만 한 게 성질머리 사나운 거인처럼 느껴졌다. 숨이 멎을 것 같이 놀라 몸을 쥐며느리처럼 동그랗게 웅크렸다. "맞아.. 나는 도망자였지?"

그 순간 내 몸이 공이라도 된 거처럼 둥글게 둥글게.. 엄마 뱃속에 태아처럼 웅크린 몸이 부드러운 구름 같은 타올로 감싸더니 어딘가 아득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며칠 전 꿈속에서 찾아갔던 그곳이다. 내 키만큼 자란 초록색 스투키와 뱅갈고무나무가 정원처럼 둘러 쌓인 아늑한 초록공간에 도착했다. 그때 본 소라 뿔 장식이 달린 테이블과 야트막한 의자에는 앉으면 몸이 푹 잠길 것만 같은 커다랗고 편안한 쿠션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초록색 눈을 가진 묘령의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나는 마치 내 집에 돌아온냥 푹신한 소파에 몸을 던지고 잠이 들었다. 잠결인가 꿈속인가?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5인격 샤먼이라는 생존자 캐릭터

우산의 영혼, 광대, 붉은 나비, 사진사.... 

"언니는 제 기분 알죠? 처음에는 많이 어렵고 무서웠지만 계속할수록 너무 재밌더라고요."

"사실 제5인격에 한번 빠지만 헤어 나올 수가 없어서 지웠다 깔았다를 정말 많이 반복했어요. 못해도 10번 이상은 한 것 같네요." 묘령의 여인 앞에서 달뜬 표정으로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얘길 한다. 그녀도 게임의 디테일을 잘 알고 있는 고수처럼 흥미로운 표정으로 대화를 이끌고 있다. 딸의 눈엔 내 모습은 보이지 않는 듯 크게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녀와 신바람 나게 떠들고 있다. 저렇게 밝은 표정과 미소를 내겐 보여준 적이 없는데.. 뭐가 그리 좋은 걸까?


내가 이 술래잡기를 왜 시작했지?

나무위키 제5인격/문제점이라는 키워드에 16개의 목차와 102개의 세부 항목이 빼곡히 열거돼 있다. 벌써 세 번째 다시 읽어보고 있지만.. 난독증이 있는 사람처럼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국어로 된 문장도 아닌데 문장을 구성한 낯선 단어들 때문에 맥락을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디스코드를 이용한 감시자의 위치 파악.. 디스코드는 뭐란 말인가그녀의 질문을 다시 떠올랐다.


"딸이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은 뭘까요?"

요즘 내가 딸과 나눈 대화가 뭐였을까?

요즘 딸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정해져 있다.

"배고파?"

"뭐 먹고 싶어?"

"뭐 있는데?"

"오늘은 갈비찜 해줄까?"

"응"

딸은 배고플 때 말고는 엄마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살고 있다.

바쁘게 재워둔 고기를 손질하고 당면도 불리고, 밥도 새로 짓고 서둘러 밥상을 차리면 밥을 먹는 그 순간에도 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딸이 푹 빠져있는 제5인격은 도망자와 감시자 캐릭터로 진행되는 게임이다. 네이버 공식 카페에는 1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고, 그 안에 내 딸이 꼭꼭 숨어있다. 내가 이 숨바꼭질에서 딸을 구해낼 수 있을까?

제5인격 감시자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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