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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 당신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어요

by 유진Jang

하늘은 짙은 남색으로 변해간다. 대학로에 있는 커핀그루나루에서 준식과 성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Can't Take My Eyes Off You"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준식(커피를 마신 후):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가...

성희(웃으며): 배우지망생인데 한예종에서 연기전공하고 있어요. 굉장히 똑똑한 친구예요.

준식: 배우는 머리가 너무 좋으면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어. 차라리 몸이 좋은 게 낫지. 근데 성희야, 어젯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느닷없이 요번 단편영화는 된다, 란 느낌이 강하게 들더라고. 주유소에서 휘발유 넣다가 말이야. 그나저나 친구 이름이...

성희(라테를 마시며): 윤지라고 해요. 이윤지.

준식: 이윤지. 이름은 예쁘네. 근데 때론 얼굴이 이름을 못 따라가는 여자들이 많아. 예전엔 어떤 여자애 이름이 민애였어. 민애, 얼마나 앙증맞은 이름이야. 근데 얼굴은 불도저로 민 것처럼 생겼더라고.

성희(커피숍 출입문을 바라보며): 저기 이윤지 왔네요.


준식, 성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윤지: 미안해... 동대문에서 차가 너무 막혔어.

성희: 괜찮아. 우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윤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는다.


윤지: 안녕하세요.

준식: 안녕하세요... 성희야 뭐 하니... 일교차 심한 오늘, 먼 길 오신 친구 커피 한 잔 시켜다 주지 않고. 여기 이 신한은행 카드로... 육천 원 미만으로 조심해서.


성희, 준식의 카드를 들고 카운터로 걸어간다.


준식(커피를 마신 후): 한예종에서 연기전공한다고 들었습니다. 훌륭한 학교에 다니십니다. 그 학교는 수위를 뽑을 때도 후레시 들고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동선을 본다면서요?

윤지(깔깔거리며): 그런가요? (사이를 두었다가) 저 근데... 성희한테 듣기론 영화를 전공하신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준식: 네...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보수적인 아버지가 반대해 전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윤지: 그렇군요.

준식: 아버지께서 발레리노셨거든요. 워낙 보수적이셔서 발레리노로 활동할 때도 두루마기를 입고 발레를 하셨어요.


윤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린다.


준식: 뉴욕에 있을 때, 뉴욕 메트로폴리탄 도서관에서 열심히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어요. 그리고 윤지 씨처럼 내면을 울리는 외면을 가진 사람과 영화 찍을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성희, 커피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온다.

준식(성희에게): 눈치도 없이 빨리 돌아오네. 두 발에 모터가 달렸나.

윤지(웃으며): 제가 연기 경험이 별로 없어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요.


(준식, 테이블 밑으로 성희의 발을 살짝 친다.)


성희: 그건 걱정하지 마. 오빠가 탁월한 연출력으로 다 커버할 수 있어. 그리고 오늘에야 말하는데 오빠 단편영화가 칸느영화제에 3년 연속 출품되었어. 올해도 출품되면 4년 연속이야.

윤지(머그잔을 들며 조심스럽게): 출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진출을 해야 하는 거지...

준식(당황하며): 역시... 듣던 대로 똑똑하군요...

윤지: 어디 진출한 영화제는 없으세요?

준식(머리를 긁적거리며): 하나 있습니다. 3년 전, 제1회 모잠비크 단편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근데 그만 그곳에서 내전이 터져서 괴한들이 영화제 도중 심사위원장 목을 따버리고 영화 보던 관객들을 기관총으로 사살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죠. (몸서릴 치며) 니 영화 틀어줄 테니 얼른 오라고 할 때 안 가길 잘했지...

성희: 이번 영화가 대단한 연기력을 요구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같이 하자.

윤지(웃으며): 그래. 그래서 나도 오늘 나온 거야.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근데 장르가 뭐예요?

준식: 코미디랑 드라마가 6대4 비율로 섞인 내용입니다. 윤지 씨는 여대생 역할입니다. 허구한 날 술에 취해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그런 역할이구요...

윤지(웃으며): 역할이 특이하네요. 언제부터 촬영을 시작해요?

준식: 대본연습을 다음 주 주중에 하고, 촬영은 주말에 할 계획인데, 어때요?

윤지: 좋아요. (성희에게) 고마워. 이런 기회를 주어서. 재미있을 것 같아.

성희: 고맙긴. 우리가 고맙지...

준식: 그럼 우리가 윤지 씨한테 고맙지. 그런 의미에서 제가 요 앞 전집에서 막걸리에 해물파전 사겠습니다.

윤지(웃으며): 그러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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