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림자가 신주쿠에 있는 가라오케 룸으로 다시 들어간다. 유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멈춘다. 그녀의 시선은 예리한 유리 조각처럼 P에게 꽂힌다.
P는 애써 우주의 파편들을 외면한다. 억눌린 분노의 부력! 그렇게 그녀의 평정심은 침노를 당한다.
P는 리카의 옆자리에 앉는다. 리카의 동공이 순식간에 커진다.
히로아키는 망설이다가 유리 곁에 앉는다. 유리의 지문이 묻은 그녀의 목소리가 툭 떨어진다.
유리의 손끝은 유리 조각에 찔린 듯 미세하게 떨린다.
정적이 창백한 유령처럼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라벤더 방향제 냄새도 이젠 희미하다.
유리가 바라본 화성이 급속도로 붉어지며 검은빛을 낸다.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유리 조각.
그녀가 우는 이유를 P는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심연 속에서 언어로 성장하지 못하고 죽은 그 나비를, P는 또 모를 것 같기도 하다.
P에게 외면당한 채 찰나 떨어진 빅뱅의 결과물들.
시간과 공간과 인간은 모두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
P가 히로아키에게 손짓한다. 두 사람이 자리를 바꾼다.
P의 손이 유리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그러자 유리는 고개를 들고 P를 노려본다.
슬픔과 원망이 뒤엉킨 감정, 날카롭게 P의 목을 벤다. 그렇다. 이 공간을 벗어나야 할 시간이다.
리카는 전철역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기타쿠에 사는 히로아키는 택시를 부른다.
P와 유리는 말없이 가라오케 앞에 서 있다.
ABC Mart의 네온 불빛은 그녀의 이마를 노랗게 물들인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큐어의 Disintegration.
초여름 바람, 은은한 샴푸 향,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며 P의 뺨을 후려친다.
P는 얼떨결에 뺨을 어루만진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다. 누군가는 쓸쓸한 미소로 본심을 감추려는 듯하다.
그녀의 손이 P의 손에 닿는다. 서늘하게 따뜻한 감촉. 어떤 대답은 질문을 하기 전에 해야 돼.
그녀의 말에 P는 바로 대답하려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