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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 종로3가의 기적

by 유진Jang

삼일절. 종로3가에 위치한 돼지국밥 골목이다. 돼지국밥 5000원. 순대국밥 5000원. 두 국밥의 차이를 물었다. 그러자 팔에 잉어와 붕어 문신을 한 초로의 국밥집주인이 돼지국밥엔 순대가 안 들어가고 순대 국밥엔 순대가 들어간다고 수화로 응답했다.(참고로 난 수화를 할 줄 안다) 나는 남자의 브레이크 댄스 같은 손동작을 보고 순대 국밥을 선택했다.


주문한 지 삼십 초만에 음식이 나왔다. 주인 남자는 보통 십 초면 나오는데 오늘은 팔이 아파서 늦게 나왔다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수화로 말했다. 나는 위로부터 주어진 인내심을 발휘하며 괜찮다고 얘기했다. 남자는 파스 냄새가 나는 기다란 허리를 구부리며 감사하다고 했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나는 수저로 뚝배기를 저었다. 그런데 순대국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순대는 딸랑 세 점이 들어있었다. 순대의 모양을 봐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국밥에 넣은 게 아니라 우연히 순대를 떨어뜨린 것처럼 부실하게 보였다.


헤겔은 분명 이 순대를 참다운 순대가 되어가기 위한 목적론적 존재라고 규정했을 것이다.


나는 항의의 표시로 태권도 앞차기 차기 시범을 보이려고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팔각형 얼굴에다가 190센티미터가 넘는 국밥집 아들의 체격을 보고 번개처럼 도로 앉았다.


나는 구시렁거리며 몇 숟가락을 먹는데 놀랍게도 순댓국은 최고의 맛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국밥 맛을 보던 개량 기모노를 입은 두 일본 여인이 박수를 치며 일어나더니 애국가 3,1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다. 종로3가는 기적의 거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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