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는 밤이 되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빛이 사라진 곳에서 존재감이 생긴다
그는 복면을 쓰고, 독일산 사시미 칼을 허리에 찬다
그의 신분증이다
칼끝의 쇠맛이 삶의 실체이고 그의 실존이다
“이 칼은 메이드 인 저머니.”
증거는 주문처럼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가 소원을 속삭일 때마다 시간은 멈추고,
즉시로 그의 삶은 증명된다
그것이 타자의 생을 훔치는 방식이고
D 자신도 훔친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
11월 초 겨울밤, 직감적으로 들어선 편의점, 그는 거기서 낯선 존재를 만난다
그녀는 180cm 정도로 키가 크고, 체형은 탄탄하다
그의 위협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서 있다
D가 칼을 들이 내밀며 "메이드 인 저머니, "라고 하자,
그녀는 차갑게 대꾸한다
“사지 않겠습니다. 칼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어요.”
D는 인간의 한계와 부딪힌다
모든 욕망은 이미 과잉이라는 것
그는 박카스를 하나를 집어 계산대에 놓는다
그녀는 말한다. “1+1 행사 중이에요.”
이 세계의 법칙은 폭력보다 유머에 가깝다고 D는 사유한다
그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문지를 때 출입문이 열린다
얼굴이 뻘건 초로의 세 남자가 들어온다
어떨 땐 짐승의 냄새와 술 냄새는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녀를 향해 상스런 희롱의 말을 해댄다 — 말은 칼보다 무디지만, 더 깊이 베이는 법
그녀의 입술 음영이 D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안쓰러움과 경외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칼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을 때,
달빛이 칼날을 따라 번진다 — 죽은 피조물의 바람이다
그녀가 번뜩이는 칼을 들고 다가오자
세 남자는 담배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진다.
밤은 또다시 정의의 사도로 변화한다
그녀는 D의 건너편에 앉은 후 칼을 탁자 위에 놓는다
“저런 놈들은 배를 갈라야 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깊고도 낮다
그녀의 코 밑과 턱 쪽에 철가루가 묻어 있다
두려움의 본질은, 심장이 아니라 자아 속에 산다
D의 왼쪽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는 박카스를 마저 마시고 말한다
“이 칼은 메이드 인 저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