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2길 포기한 흑곰

by 유진Jang

성북구에 있는, 다니는 사람 하나 없고 CCTV도 없는, 회칼에 베인 비린내가 배인 골목, 전봇대 뒤에 커다란 흑곰 한 마리가 숨어 있었다 저녁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그는 석 달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헬스 트레이너로 보이는 근육질의 사십 대 남자가 건들거리며 골목에 들어섰다 전자담배를 문 남자는 흑곰을 발견하자 기절할 듯 놀라, 그 자리에 딱 얼어붙었다 흑곰은 다가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담뱃불 꺼라” 남자는 벌벌 떨며 흑곰이 시키는 대로 했다

“널 죽일 생각은 없다, 난 단지 배가 고플 뿐이야, 난 배가 고프면 좀 예민해지고, 난 예민해지면 난폭해져 - 상상을 초월할 만큼” 흑곰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남자는 치아를 딱딱딱 부딪히며 지갑 속에서 지폐를 몽땅 꺼내 건넸다.

“15만 원이라, 성의 표시는 했군”

흑곰은 킁킁거리며 돈 냄새를 맡았다 남자는 사정조로 사정했다 “이제 가도 되겠습니까?” 흑곰은 ‘가라’고 했지만, 경찰에 알리면 찾아가 복수하겠노라고 덧붙였다 남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쏜살같이 도망쳤다


애니멀 전용 마트, 흑곰은 그곳에서 참치와 연어 스테이크를 샀다 마트 안 테이블에 앉아 막 식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고 환한 경광등장 속으로 스며들었다 특공대처럼 보이는 요원들이 기관총을 든 채 불빛을 밀고 들어왔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메가폰으로 외쳤다

“방금 골목에서 강도 행위를 한 곰을 찾고 있다! 지금 자수하면 살려주겠다. 아니면 사살한다!”

주류 통로에 있던 오소리들과 하이에나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술에 취한 듯 보이는 캥거루가 아사히 맥주 캔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소리쳤다 “자살공화국에서 사살당할 바엔 자살하고 말지!” 특공대가 캥거루를 둘러싸고 총부리를 겨누었다 빨간 머리띠를 두른 한 대원이 개머리판으로 캥거루의 머리를 강타하자 캥거루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동물들이 웅성거렸다

소란을 틈타 흑곰은 자세를 낮추고 조용히 뒷문 쪽으로 기어갔다 잽싸게 마트를 빠져나왔지만, 음식을 찾아 다른 식품점에 갈 심적인 여유는 없었다 분노와 배고픔과 불안은 신경쇠약증에 이르는 지름길, 알프라졸람 두 알을 먹은 흑곰은 자신을 신고한 남자를 찾기로 결심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살 거야, 반드시 찾아서 죽인다” 흑곰의 눈동자는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식육목의 후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골목에서 남자를 만난 지점에서부터 킁킁거리며 남자의 체취를 추적했다 십여 분 뒤, 쿰쿰한 냄새로 진동하는 집을 찾아냈다 희미한 불빛이 남자가 사는 2층 집 창문으로 새어 나왔다 흑곰은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리던 텔레비전 소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남자는 겁에 질렸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문틈에 대고 물었다 “누구세요?”

흑곰은 목소리를 바꿔 변조했다 “통장입니다, 물어볼 게 있어서요” 남자는 ‘통장’이라는 말에 안도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흑곰은 거칠게 집 안으로 파고들었다 남자는 사신을 본 듯, 부르르 떨며 선 채로 오줌을 쌌다 흑곰은 곧장 앞발로 남자의 얼굴을 내리쳤고, 그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남자는 변명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흑곰은 남자의 축 늘어진 몸에 대고 읊조렸다 “나도 한때는 너보다 더 인간다운 인간이었고, 너보다 더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날 이렇게 만든 건 개 같은 이 사회라고”

살해된 남자는 ‘Doosan Bears’라 적힌 남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피에 물든 옷은 조금씩 검붉게 변해갔다

"난 오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지도 않을 거야" 흑곰은 중얼거리면서 남자의 집을 차고 나갔다

탕! 탕탕탕탕 탕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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