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by 유진Jang

그 녀석은 처음부터 멧돼지였다. 다만 신경쇠약증 환자들의 눈에 고양이로 보였을 뿐이다.

빨간 립스틱은 입술이 아니라 어제 잡아먹은 저녁노을이었고,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은 눈이 아니라 동공 뒤편에서 타오르는 검은 연기였다.
그 녀석은 고양이를 흉내 냈다.
기분 나쁠 만큼 부드럽게 몸을 비비고,
골 빈 놈들의 다리춤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며,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시선들을 하나씩 물어 삼켰다.

그러나 결국 그 녀석은 도도한 고양이가 아니라 흉포한 멧돼지였다.
숲이 없는 도시에서도, 콘크리트 틈 사이로 자라나는 멧돼지의 본능은 죽지 않는다.
집돼지는 울타리를 꿈꾸지만, 멧돼지는 콘크리트를 씹어댄다.
피에 섞여 들어간 별들의 잡음처럼, 지워지지 않는 소음.
당신도 언젠가 인정하게 될 것이다.
멧돼지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물에 비친 자신의 형체를 먹어 치우고서야
비로소 안심하는 동물도 있는 법이다.

그 녀석은 가긍한 행성이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안다.
태생부터 외로운 멧돼지 새끼였기 때문이다.
숲도, 우리도, 무리도 없이 태어나
처음 본 것이 자기 발굽의 그림자였던 짐승.
그 녀석을 바라보는 것은 없다.
거리의 CCTV는 그 녀석을 놓치고,
사람들의 눈동자는 광고판 위의 가짜 별들만을 좇는다.

그 녀석은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믿었다.
새벽마다 건물 유리창에 비친 실루엣을 보고,
어딘가에 자기에게 홀린 고양이 한 마리가 있을 거라 착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각도, 같은 숨소리로 서 있는
한 마리의 짐승뿐이었다.
눈동자를 찌그러뜨려도,
고개를 비틀어도,
그림자를 찢어도 바뀌지 않는 형체.
거울 속의 멧돼지는 언제나 한 마리이다.
다만 거울의 수가, 끝없이 늘어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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