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산책

by 유진Jang

두류공원 근처를 걷고 있었는데
인디고 하늘이 S를 스치며 지나갔다.
달은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달이 보이지 않는다는 현상만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없는 건 아니었다.
존재는 잠시
시간을 접고 있었을 뿐,
접힌 자리에
검은 주름이 생겨 있었다.

83 타워가
노란 침을 흘리고 있었다.
침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롱대롱 매달려
자기 그림자를 흡수하고 있었다.
어떤 것들은
보이기 위해 태어나고,
어떤 것들은
보이지 않기 위해
매일 죽는 연습을 한다.


조금만 더 가면 환하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일 지도 몰라요.
S의 수줍은 목소리는
파장보다 신속히
밤안개를 통과했다.

오십여 미터를 직진했다.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갔지만
시선은 뒤에 남아 있었다.
고개를 돌렸을 때
83 타워는 스스로 접는 구조물이
되어 탄식을 거두고 있었다.

S는
가늘고 낮게 숨을 내쉬었다.
반짝이지 않는다고

존재가 사라진 건 아니에요.
내일을 위해 잠시 눈을 감은 것일 뿐.
살아 있
눈을 감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 말 끝나자마자 예상치 못한
보슬비가 떨어졌다.
톡, 톡톡톡.
빗방울들은
속눈썹 위에 앉아
인기척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는
비 냄새로 가득 찼고,
냄새는 특정한 루트를

따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S는 손을 흔들었고
그녀의
실루엣은 스르르 도로 쪽으로 움직였다.
길 건너
오렌지빛 택시가
방향을 틀었는데
창세 전부터
그들을 태울 작정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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