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하늘이 지워지는 소리였다.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무겁게, 그러나 더 투명하게 숨을 쉬었다.
사장은 골프채를 움켜쥔 채 하늘의 균열을 올려다보았다.
K는 창고 안에서 무게 없는 상자를 옮겼다.
포장된 물건이 아니라, 기억의 잔해를 정리하는 노동. 제발please제발.
나무상자 위에서 한때 인간이었던 여인의 잔상이 그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공기보다 가벼웠고, 빗방울보다 오래 머물렀다.
살아 있는 자의 귀를 통과해 죽은 자의 온기를 남겼다.
“시카고를 떠나. 아이들은 죽었고 천사들도 진작에 그 도시를 떠났어.
그곳은 곧 유황에 젖을 거야. 너는 네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야 해.
반드시 돌아가야 돼.”
K의 사유 속에서 언어와 시공간은 후퇴해 갔다.
‘심판’이라는 말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 의미도 남지 않았다.
오직, 어떤 거대한 의지의 냉기만이 공간에 남아있었다.
K가 화장실에서 내는 소리는
빗소리와 구분되지 않았다.
육체는 아직도 무거웠으나, 이끼는 비와 더불어 흘러내렸다. 제발please제발
문밖으로 나가자 호우는 그를 씻기지 않고 덮었다.
무언가가 끝나려는 때마다 세상은 물의 언어로 침묵했다.
K는 재래시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순댓국 김 사이로 오래된 얼굴이 피어올랐다.
살아 있음은 단지 낯선 형태로의 반복이었고,
귀향은 육체의 이동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신으로의 회귀였다.
"짧게 깎아주세요."
이발소 거울 앞에 앉아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걸 보았다.
몸의 일부가 현실에서 이탈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우주로 떠나버렸다.
경감에 비친 K는 조금 낯설고 조금 더 명료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미소를 지은 채 뻣뻣해졌다.
"퇴근해야지."
메타버스 324는 다시 일상의 껍질로 돌아왔다.
그러나 버스 속 K는 이미 하차하고 없었다.
하얀 빗줄기는 여전히 작동했다.
그는 빗속 어딘가에서,
신의 심판이 아니라 더 오래된 부름 —
잃어버린 존재를 위한 음성의 근원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