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는 두 번째 위스키 병을 열었다.
병마개는 바닥을 기었고, 알코올은 식도가 아니라 기억을 태웠다. 액체는 위에서 아래로 흘렀지만 불은 아래에서 위로 타올랐다.
젖은 창문 표면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울었다.
불빛은 울음이었고, 울음은 눈빛이었다.
도시는 인간의 형상을 잊은 채 누워 있었다.
그의 폐와 흉막이 느리게 팽창했다가 꺼졌다.
P는 호수에 비친 자신을 보았으나,
그 얼굴은 늘 타인의 사상으로 조립된 것이었다.
그늘은 P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광명은 늘 남의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등 뒤에서 숨이 생겨났다.
공기가 아닌 어떤 의지가 들숨과 날숨을 흉내 냈다.
폭우는 장막이 아니라 껍질.
그 껍질을 찢으며 회흑색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는 선지자로 늙어 있었고,
짐승의 미래를 갖고 있었다.
P를 본 선지자는 멈춰 섰다.
오 시간보다 무거운 멈춤이여.
P는 남은 위스키를 삼켰다.
삼킴은 행위가 아니라 나락.
그의 입에서 문장마저 추락했다.
“나는 태어나버렸고,
피투된 것은 내 선택이 아니었어. 사라진 모든 별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말들이 빗속으로 빠르게 흩어졌는데
번개는 그것을 읽으려다 포기했다.
귀를 닫은 도시,
하늘은 듣고도 모른 척했다.
선지자가 P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은 분명 손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의 추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
털과 발톱,
그리고 오래전 잊힌 봄의 향기.
두 손이 맞닿는 순간
빗방울들이 부서졌다.
물은 물이기를 증명하며
소리로 튀어 올랐다.
천둥이 생존한 타워를 찢었는데
찢어진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도시의 맥박이었다.
P는 알았다.
죽음은 문이 아니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문 너머에 아무도 없는 절대고독이었다.
거대한 회색 곰이 일어났다.
곰의 몸 안에서
여러 개의 밤이 동시에 숨을 쉬고 있었다.
P는 눈을 질끈 감았다.
피와 비가 구분 없이 흘렀고,
불빛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이름을 잊었다.
금생은 마지막 들숨을 들이마신 후
P를 놓아주었다.
이로써 탈출은 완성되었다.
실패라는 단어는
클라이맥스에 도착하지 못했고,
남은 것은
지나칠 만큼 냉소적이었지만
끝내 거짓말하지 않은
한 인간의 형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