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edzie Internet Cafe. 피시방 바로 앞에 차를 주차한 뒤 크리스는 그의 회색 말리부에서 내렸다. 청바지 주머니에서 가게 열쇠를 꺼낸 다음 그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스토어 문을 열었다. 쾌쾌한 담배 냄새가 나무 바닥 구석구석에서 흐물거리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자식들 담배 좀 작작 피워대지.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벽에 붙은 스위치를 올렸다. 내부가 더욱 환해졌고 크리스는 실내 환기를 위해 출입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는 냉장고에서 포도주스를 꺼내 들이켰다. 카운터 뒤에 걸린 시계를 보니 10시 40분이었다. 오픈 시간까지는 이십 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설치된 20대의 컴퓨터를 1번부터 20번까지 차례대로 켰다. 크리스는 작년 봄, 그의 대학교 선배로부터 피시방을 인수했다. 처음 몇 개월은 그럭저럭 수입이 괜찮았지만, 지난가을, 링컨 애비뉴에 "고인돌 피시방"이 생긴 후로는 그야말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인돌 피시방 주인이 다름 아닌 크리스에게 피시방을 판 대학선배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크리스는 결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고인돌 피시방은 크리스의 가게에 비해 훨씬 쾌적한 환경과 고성능 최신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켓지 인터넷 카페를 찾던 많은 손님들이 크리스에게 그들의 등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크리스가 피시방에 더 투자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자르고, 크리스가 오전 11시부터 밤 11시 문 닫을 때까지 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신선한 공기가 투입되었고 그에 맞추어 오픈 시간이 되었다. 가게 앞에 쪼그려 앉아있던 드미트리와 그의 일당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쳐들어왔다. 그들은 근처에 사는 히스패닉 꼬마들이었다. 우두머리인 드미트리가 구석에 있는 10번 컴퓨터에 앉았다. 나머지 세 명이 그 옆으로 나란히 앉았다. 가장 키가 작은 아이가 크리스에게 12달러를 건네며 한 시간, 이라고 외쳤다. 크리스가 아이들이 앉아있는 컴퓨터를 켜자 꼬마들이 두 손을 비벼대며 흥분했다. 곧 선혈과 비명이 낭자한 인터넷 게임이 시작되었고 꼬마들의 입에선 F자 단어가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저런 녀석들이 좀 더 크면 진짜 총 들고 날뛰는 갱이 되겠지. 크리스가 혀를 끌끌 차며 혼잣말을 했다. 크리스의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공복 시그널을 보냈다.
크리스는 같은 단지에 있는 해운대 갈빗집에 전화했다. "여기 피시방인데요. 김치찌개 하나만 갖다 주세요. 지난번엔 싱겁던데 얼큰하게 좀 해주세요." 그가 주문한 뒤 전화를 끊으려는데 식당 아저씨가 하수도 요금을 언급했다. "지난달에 72불이 나왔는데, 그냥 70불만 줘." "알겠습니다." 크리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십 분쯤 지나자 해운대 웨이트리스가 음식이 든 종이백을 가지고 왔다. "감사합니다." 크리스는 지갑에서 80불을 꺼내 웨이트리스에게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크리스를 바라봤다. "그중 70불은 하수도 요금이니까 주인아저씨 갖다 주세요."
혹시나 했던 그녀는 역시나 하는 실망한 기색으로 돌아갔다. 크리스가 김치찌개와 반찬, 밥을 차례로 봉투에서 꺼냈다. 그의 요구대로 김치찌개는 지난번보다 훨씬 더 맵게 보였다.
그가 도토리묵을 나무젓가락으로 집었다. 드미트리가 김치냄새를 참지 못하고 불평을 토해냈다. "What the hell is that? It smells like shit!"
"Shut your mouth!" 크리스가 그에게 즉시 소리쳤다. 드미트리는 뭐라고 툴툴거리며 마우스를 미친 듯이 클릭해 총을 난사했다. 출입문에 달린 작은 방울이 울리며 인도계 여인이 들어섰다. 크리스는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를 먹으며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민첩하게 훑어봤다. 그녀는 피시방 중앙에 있는 11번 컴퓨터에 앉았다. 크리스가 냉장고에서 마운틴듀를 꺼내 그녀에게 다가갔다. "It's on the house." 그녀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크리스가 말했다.
"Oh, you're so kind!" 그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까딱 숙였다. 크리스는 그녀의 앙가슴에서 발산되는 향신료 향에 취해 타지마할의 굴곡과 여인의 굴곡을 동시에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오전에는 화창했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폭우가 곧 쏟아질 기세로 음침하게 달라졌다. 크리스는 5번 컴퓨터에 앉아 ESPN 사이트에서 메이저리그 스코어를 확인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2-7 뉴욕 양키스. 화이트삭스의 열렬한 팬인 그가 분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양키스한테는 통 힘을 못 쓰냐. 그가 이번에는 네이버 사이트로 들어갔다. 홈페이지에 떠있는 수많은 기삿거리는 서울의 교통체증을 연상시켰다. 유명한 정치인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는 내용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어떤 사업가가 정치인한테 돈을 갖다 바치는 이유와 기독교인이 교회에 헌금을 내는 목적이 본질적으로 비슷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크리스는 낮게 읊조리며 이마를 덮은 앞머리를 손으로 매만졌다. 피시방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머리가 매우 짧고 반항적으로 생긴 흑인 남자가 들어섰다. 프레드였다. 크리스는 그가 단골임에도 그의 방문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프레드가 항상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그에게 걸어가 조용히 게임을 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프레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태도로 어깨를 들썩였다. 크리스의 사전 경고가 먹혔던지 프레드는 삼십 분이 넘도록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얌전히 게임을 했다. 저 자식이 웬일로 조용하네. 크리스가 의외란 기색으로 피식 웃었다. 하지만 크리스의 미소는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Motherfucker! Shot me from behind!" 프레드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주먹으로 세차게 책상울 내리쳤다. “Hey one more time you shout, you're done!"
크리스 역시 그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프레드는 킬킬대며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크리스가 말보로 라이트를 물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여전히 시커먼 먹구름이 도시의 상공을 장악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하얀 담배연기를 대기 속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득 해경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헤밍웨이 북클럽에서 알게 된 그녀는 그보다 여덟 살이 어린 스물일곱 살이었고, 키는 167센티미터 정도에 얼굴은 누가 보더라도 예쁜 축에 속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뒤 J.P 모건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잠시 쉬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이 세 번째로 데이트를 하던 날, 크리스는 그녀와 섹스를 했다. 해경은 그를 애인으로 생각했지만, 크리스는 그녀를 정욕의 분출 대상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가끔씩 그녀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주면 됐다. 해경아 사랑해. 크리스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야?"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샴버그에서 친구 만나고 있어. 무슨 일 있어?" 해경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네가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크리스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럼 이따가 끝날 때쯤에 내가 피시방으로 갈까?" 해경이 킥킥대며 물었다.
크리스가 그러면 좋지,라고 대답하며 해운대로 들어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정확히 11시가 되자 크리스는 가게 문을 닫고 십 분 전 도착한 해경과 함께 근처에 있는 풀라스키 모텔로 직행했다.
"오빠, 그런데 콘돔 있어?" 해경이 그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콘돔? 너 약 먹잖아. 그리고 너랑 나 사이에 고무가 끼어드는 거 고무적이지 않아. 어떤 사람도 어떤 물질도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거 난 반대라고. 내가 알아서 잘할게."
"지난번에도 알아서 잘한다고 해놓고선 안에다 그냥 그랬잖아." 해경이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표정을 본 크리스는 알았다면서 링컨 애비뉴에 있는 BP 주유소에 들렀다. 콧잔등에 주근깨가 가득한 백인 여자가 계산대에 앉아 있었다. 크리스가 선반에서 트로잔 한 상자를 집어 들고 카운터 앞에 섰다. $4.35. 여자가 말했다. 크리스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Have a great night,라고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크리스가 주유소를 서둘러 나왔다.
크리스와 해경이 길을 건넌 다음 모텔로 들어갔다. 방 키를 받은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룸에 들어선 해경과 크리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몸을 탐닉했다. 오 분여 간의 애무를 마친 크리스가 급하게 그녀 안으로 들어갔다. "오빠 천천히 Please be gentle." 해경이 크리스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더욱 세차게 허리를 요동쳤다. 벌어진 커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불빛이 해경의 눈동자 속에서 스파크를 튀며 부서졌다.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이던 크리스가 몸을 부르르 떨며 그녀의 배 위로 엎어졌다. 해경이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그의 달팽이관에 희미하게 박혔다. 크리스가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손을 뻗어 탁상용 램프 옆에 놓인 담뱃갑을 집었다. 해경이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여주자 그는 담배연기를 천장 구석을 행해 내뱉었다. "오빠 정말 나 사랑하지?" 그녀가 크리스의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그는 당연히 사랑하지,라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