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전 9시쯤 일어난 크리스는 해경의 몸을 쓰다듬다가 그녀와 또다시 모닝 섹스를 즐겼다. 그 여파로 인해 그는 삼십 분 늦게 피시방에 도착했다. 드미트리 일당이 전선 위 참새처럼 문 앞에 쪼르르 앉아 있었다. 드미트리가 왜 이제야 오느냐며 눈을 흘기며 크리스에게 말했다. "You should treat us better, you know we are VIPs." 크리스는 오케이,라고 한 다음 가게 문을 열었다. "Wait a second, I've gotta turn off the alarm." 그는 말한 뒤 알람을 끄고 오픈 사인 줄을 당겼다. 드미트리 일당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안으로 들어왔다. 항상 앉는 구석자리에 그들이 하나둘씩 엉덩이를 붙였다.
"Guys, if you turn on all the computers, I'll give you half an hour for free!"
크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명의 아이들이 후다닥 일어나더니 컴퓨터를 켜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흐뭇하게 웃으며 카운터에 있는 메인 컴퓨터를 켰다. 그는 전체 시스템을 확인하고선 전기주전자에 물을 부었다. 드미트리가 카운터로 걸어와 돈을 건넸다. "Here! And you keep the promise, right?" 드미트리가 되돌아가며 소리쳤다. 크리스는 어린놈이 의심도 많네, 라며 중얼거렸다. 그는 펄펄 끓는 물을 컵라면 용기에 부었다. 벌겋게 번지는 라면수프를 보며 그는 해경의 허벅지 사이를 떠올렸다. 그녀의 몸을 사랑하는 것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지도 몰라. 내가 사랑을 어떤 정신적이면서 정서적인 감정으로 정의 내렸기 때문에 해경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었을 수도 있어. 나는 그녀의 탄력 있는 몸을 좋아하고, 또 그녀와 섹스하는 걸 좋아해. 좋아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잖아. 고로 나는 나 자신을 속이는 것도 아니고 해경이를 속이는 것도 아닌 거야.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어. 오히려 사랑의 정의를 생각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정립하는 거야.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정죄할 필요는 없어.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자신을 정죄하는 건 더욱 어리석은 처사일 거야. 크리스는 사유를 거듭하며 나무젓가락을 갈랐다, 출입문에 걸린 벨이 울리며 눈부신 금발을 한 미모의 여인이 들어섰다.
그녀는 피시방을 처음으로 와본 듯 신기한 표정으로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그녀로부터 은은한 화이트 머스크 향이 났다. 크리스가 그녀의 뒤로 다가가며 물었다.
"May I help you?"
"Can I use internet?"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Sure you can!"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가 지갑에서 오 불을 꺼내 크리스에게 건넸다.
"You've just paid for two hours and half." 크리스가 지폐를 금전등록기에 넣으며 말했다.
"Thanks, that'll be enough."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리고 그는 컵라면을 들고 금발 여인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인은 그를 슬쩍 본 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녀가 상체를 숙일 때마다 그녀의 가슴 일부가 드러났다. 크리스는 여인의 유방을 힐끔거리며 컵라면을 먹었다. 하오를 통과해 빛의 산란으로 노을이 하늘에 뿌려질 시간임에도 피시방을 찾는 손님들은 거의 없었다. 신경을 써서 그런지 배가 살살 아파오자 크리스는 하루 매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거시적으로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그는 여전히 고인돌 피시방 주인이 자신에게 켓지 피시방을 넘긴 그의 선배일리는 없다고 굳건히 믿었다). 묵직한 바람이 스토어 창문에다가 그 몸을 세차게 부딪혔다.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영혼은 없을지라도 몸은 갖고 있다. 원자도 바람도 몸이 있는 것이다. 크리스는 시카고의 닉네임이 윈디 시티라는 게 새삼 생각이 났다. 그는 이 도시 역시 정신뿐만 아니라, 몸을 가진 유기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몸에 대해 숙고하던 그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스프라이트를 꺼내 벌컥대며 마셨다. 탄산으로 인해 그의 목젖이 찌릿찌릿했다. 크리스는 가게 문을 닫고 오늘도 풀라스키 모텔로 향했다. 그가 모텔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경이 그가 있는 201호실 문을 두드렸다. 해경은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했는데 크리스는 그녀의 헤어스타일로 인해 그녀가 훨씬 더 섹시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