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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Feb 19. 2021

386 세대, 그 거추장스러운(2)

(글을 두 개로 나눈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쓰다가 불편한 무언가에 턱 걸렸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다. 30년이 훨씬 지난 기억들을 소환하다 보니 스스로 감정이 약간 격해져 차분하게 글을 이어나가기가 어려웠기도 했고.)


누구보다도 뜨거웠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거리에서 청춘을 불태웠던 386 세대들은 왜 변한 것일까. 왜 보수화 돼버린 것일까. 50대가 되어 지금은 586으로 불리는 우리 세대들은 왜 꼰대 소리를 듣는 지경까지 온 것일까.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선구자격이었던 419 세대가 이제는 보수화를 넘어 극우화 되어버린 이유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그 첫 번째 좌절의 시간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부터 시작된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는 7년 동안 수많은 부작용과 저항을 낳았다. 결국 4.13 호헌조치,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최루탄 직격 사망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된 87년 여름 서울의 거리. 그것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로부터 장장 25년을 시달린 군사독재에 종지부를 찍을 마지막 기회였다. 대학생에서 회사원들로, 일반시민들로 번진 6월 항쟁의 열기는 지난 2016년 겨울의 촛불집회 못지않았다. 아니 더 대단했다. 약 10일 정도 지속된 극렬했던 시위에 신군부 세력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대통령 직선 개헌. 드디어 군인이 아닌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13대 직선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씨와 김영삼 씨는 끝까지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고 1988년 겨울, 12.12 사태의 주범이던 또 다른 한 명의 군인은 날름, 어부지리로 청와대에 입성한다. 희망이 꺾인 첫 번째 좌절이었다. 그 상실의 시대는 바로 절망과 포기를 불러왔다. 크게 낙담한 우리는 소주병들을 쓰러뜨리는 일 이외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두 번째 좌절은 5년 후에 똑같은 모양으로 찾아온다. 제5 공화국의 연장이었던 민정당은 극적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으나, 6월 항쟁 이후 계속된 국민들의 민주화 및 군사정권 청산 요구는 이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누가 봐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선 직후 치러진 88년 총선에서 민정당은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 또한 386 세대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결과였다. 그 후 노태우는 여소야대 정국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보수대연합을 추진했다. 8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와신상담하던 김영삼은 1990년 벽두에 노태우와 함께 3당 합당을 발표했다. 그 결과로 통합된 수권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의 의석 수는 독자 개헌선인 200석을 넘었고, 그 결과로 김영삼은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을 물리치고 평생 숙원을 이룬다.


"이의 있습니다!" 3당 합당에 반대를 외치던 노무현 당시 통일민주당 초선의원


386세대를 필두로 한 민주진보 세력에게 그 사건은 88년의 데자뷰였고, 또다시 엄청난 상실감을 겪어야 했다. 누가 보아도 기회주의적 거대 보수연합이었고 장기집권을 위한 정당 쿠데타였다. 호남은 철저히 고립되었고 지역감정은 극에 달했다. 민주화를 목놓아 외쳤던 우리 세대에게 김영삼 정부는 군사정권과 야합한 비겁한 변절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나마 군사정권의 종식, 문민정부의 시작이라는 말로 서로를 위로했지만 대통령 말고 바뀐 것은 별로 없었다.


대학 운동권의 ‘신화와 전설의 시대’는 그 두 개의 사건들 이후 저물기 시작한다.




386 세대의 관심은 슬슬 정치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치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30대가 되기 시작한 이들은 자신들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세상과 타협했다.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에 눈을 돌린다.


당시 386 세대는 벤처 붐의 혜택을 누렸다. 인터넷과 IT 산업 분야에서 이들은 지식인으로 대접받았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대기업을 나와 벤처기업을 창업한 것은 386 세대의 시대적, 도전적 성향을 대변한다. 벤처 거품이 하나씩 걷힌 뒤에도 이들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현재 코스닥을 이루고 있는 기업들의 중심이 되었다. 민주화에 대한 386의 열정에 역사는 그렇게 합당한 보답을 한 셈이다.


그러나 정치에 환멸을 느낀 386은 변절의 대명사가 되었다. 김대중의 후광을 입고 정치계에 발을 들인 전대협의 신화 김민석이 총선을 앞두고 정몽준 캠프로 둥지를 옮긴 일은 386 변절의 상징성을 띄는 사건이다. 누구보다도 386 세대를 잘 이해하고, 386을 적극 중용했으며, 그 세대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던 노무현으로부터 가장 먼저 등을 돌린 것 또한 386세대이다. 박근혜가 당선되었던 18대 대통령 선거는 또 어땠나. 연령대 지지율을 보면 그 당시 40대 중후반에서 50대를 형성하고 있던 386 세대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40%를 밑돌았고, 20-40대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연령별 투표율 또한 가장 저조했음은 물론이다. 이쯤 되면 배신의 끝판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기득권이 된 386, 아니 586 세대들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빚이 있다.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렸으니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강변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촛불 혁명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이념의 갈등, 더욱 악화된 계층과 세대 갈등으로 분열된 사회를 어떻게 통합하느냐 하는 민족적인 큰 숙제에서, 과거 가장 치열하게 세상과 부딪혔던 386 세대는 도망치려 해서는 안된다. 그 갈등이 점점 심해져 이제는 피아(彼我) 진영 대립으로 곪아 가고 있다. 그 한 축에 서서 대치하는 것이 우리 몫이 아니다. 우리에겐 그것을 봉합하고 치유하고, 화합을 이끌어 내야 할 역사적인 책임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질풍 같은 세대로 기억에 남고 싶다면, 뒷방으로 가기 전에 마무리를 짓고 떠나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누군가에게는 사장님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결정권을 움켜쥔 기득권자로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 각 계층의 임원, 주요 자리를 꿰어 차고 있는 우리 세대. 부동산 특수도 가장 많이 누린 혜택 세대. 권력의 정 중심에 있는 세대. 그런 우리 세대가 젊은 세대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419 세대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을 되밟지 않기 위해서는 분명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그것이 어떤 모양으로 도전해 올지언정 회피해서는 안된다. 시대가 허락한 모든 이득과 권력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불평등과 갈등을 조장한 대표적 세대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헬조선'을 만든 주범이라는 오명을 씻어야 한다.


386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오기 위해 마지막으로 치러야 할 댓가인 셈이다. 우리가 세상을 만들었다는 우월의식을 버리고, 공포스럽던 청자켓 무리들 속으로 이를 악물고 돌진하던 그때의 기억을 소환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는 우리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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