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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Feb 24. 2021

전염병, 역사 그리고 인간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악의 바이러스는 1918-1920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H1N1)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한 인구의 세 배인 5천만 명에 이른다. 이 스페인 독감의 발병지는 이름처럼 스페인이 아닌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한 교도소였다고 한다. 전 세계 인구의 10%가 넘는 5억 명이 감염되었다.


스페인 독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당시 조선에도 나타난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를 ‘서반아 감기’라고 불렀는데 약 740만 명이 감염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매일신보>는 많은 학교가 휴교하고, 회사들은 휴업했으며 추수를 할 수 없어 민심이 흉흉했다고 전하고 있다. <백범일지>에도 김구 선생이 1919년 약 20일간 서반아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치사율 10%를 기록했던 스페인독감 (1918-1920), 출처 Wikipedia

1967-1968 사이에 발생한 홍콩독감(H3N2)은 전 세계적으로 약 1백만 명 정도의 사망자를 냈다. 그러나 당시 전 세계 인구의 약 40%인 20억 명 정도가 감염되었었다고 한다. 치사율에 비해 감염력은 어마어마한 속도를 보여주고 있는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와 아주 흡사한 진행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대유행 바이러스는 50-60년을 주기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홍콩독감 이후 50년만에 찾아온 이번 COVID-19에 우리는 과거 학습한 것을 잘 적용하고 있을까?


14세기부터 300년 동안 유럽 인구 1/3의 생명을 앗아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 페스트 이후, 그리고 5천만 명을 사망하게 한 백 년 전의 스페인 독감 이후, 아마도 세 번째(그러나 아직도 진행 중인)로 기록될 것 같은 COVID-19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모든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알베르 까뮈는 그의 소설 ‘페스트(La Peste)’에서 의사 리외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 이 기록은 공포와 그 공포에 대항해 수행하여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하여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사진출처 Wikipedia

까뮈의 페스트는 소설이다. 1940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COVID-19 사태는 그보다 더 소설 같은 상황이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이 극악스런 전염병에 맞서 투쟁해 왔지만 결코 신의 영역에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절절히 통감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전염병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이유는 인간의 교만함에 대한 신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던 파늘루 신부도, 끝까지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리외도, 페스트가 창궐하자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긴 장 타루도, 그리고 혼돈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긴 코타르도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저항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까뮈가 그의 소설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페스트(나치)의 침략에 저항하는 인간사이의 연대 (개인주의에서 벗어난), 공감, 그리고 저항에 대한 것이었다.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서 설명하듯, 인류의 전염병은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 해 왔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기 위해 고기와 젖, 가죽, 모피, 교통수단 등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야생동물들을 가축화하면서, 동물들의 몸을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가 그 숙주를 인간의 몸으로 옮길 수 있도록 스스로 변이하게 되었고 인간들간의 전염병이 시작된 것이다. 천연두, 홍역, 매독, 황열병, 말라리아 등 바이러스부터 눈에 보이는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염체들이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은 것이다. 또한 인간들이 영토를 넓히기 위해 다른 부족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전염병은 부족에서 부족으로, 민족에서 민족으로 이동했다. 전염병은 그렇게 주기적으로 인류의 생명을 빼앗아갔다.

전세계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및 사망자 통계 (2/23/2021)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끔찍한 일을 겪었다. 전 세계 1억 1천만 명 이상이 감염되고 250만 명이 죽었다. 미국에서만 50만 명이 사망했다. 절망적인 것은 이 상황이 까뮈의 페스트처럼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태가 끝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전세계 인구의 최소 65% 정도에게 백신접종이 되어야 집단면역이 생긴다고 하는데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질병에 대항하고 있는 이때, 코타르처럼 이 혼란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영리적 목적을 위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큰 절망에 빠진다.


사람이 가득 찬 빌딩에 불이 나면 불에 타 죽는 사람보다는 연기에 질식사하는 사람이 더 많고, 그보다 더 많은 건 서로 먼저 나가려고 서둘다가 깔려 죽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재난상황이 되면 국민들이 흥분하지 않도록 언론이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현명하고 침착하게 대처해 주어야 하는데, 거꾸로 더 자극적이고 더 심각한 워딩으로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 짓들을 하고 있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모 대형교회 목사가 주일 설교 강단에서 “세균이라는 이름 가진 사람을 총리로 세우니까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한국을 벌주는 것이다”라는 설교를 했다. 얼마나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타락했는지 잘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종교지도자, 정치인, 지식인, 그리고 언론들이 보여 준 행동이나 언사들은 지극히 야만적이고, 편협하고, 무지하고, 또한 폭력적이었다. 지금도 그 바이러스 때문에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이 짓밟혀지는 것을 매일같이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출처: Google


바이러스는 죄 없는 대통령을 탄핵시킨 한국 국민들에게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 것이라던 종교 지도자들, 중국인들의 입국을 봉쇄하지 못해서 사태가 이렇게 되었다, 이 사태의 원흉이 현정권이다 라고 억지를 부리던 정치인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집회 오면 낫는다던 어떤 목사, 정부가 무능해서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질타하다가 백신이 확보되니 안전성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언론들, 세계가 인정하는 K방역이 최악이라고 폄훼하는 지식인들까지 모두가 제정신들이 아닌 듯 보인다.


혼돈의 상태 (chaos)에 처해지면 본능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야만성과 잔인성이 드러난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냉정해져야 하는데, 이럴 때 감춰져 있던 모두의 광기들이 드러난다. 나는 아니지 하면서도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돌을 던져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과 군중심리. 아마 중세시대에 군중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은 많은 이들 중에서는 돌에 맞는 대상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던 어떤 사람이 던진 돌을 맞고 죽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2천 년 전 힘없이 끌려가는 예수를 바라보던 유대인들은 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바이러스처럼 퍼진 집단 광기는 예수 대신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라 소리치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일곱 살짜리 우리 집 개도 몇 번 야단을 맞으면 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 과거 야단을 맞은 정도가 아니라 삶이 뿌리째 뽑혀 나갈 정도록 혹독하게 혼나고, 학습한 것들을 잊는다면 개만도 못하다는 욕을 들어도 억울할 것이 없다.


재난상황에서 살아 남는 것은 힘센 사람들이 아니라 냉철한 사람들이다. 까뮈의 소설에서도 보듯, 반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의 작은 힘들을 합하는 사람들이 종국에 가서 승리한다. 정부 시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사건건 흥분한 모습을 보인다는 건 이미 '나는 이성을 잃었다, 두렵다'고 실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50년 전, 100년 전에 절대자, 혹은 악마로부터 받았을 학습내용을 적용시켜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귀함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 힘들어도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그것만은 잃지 말자. 제발.


* 타이틀에 사용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제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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