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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Feb 17. 2021

정직과 원칙, 그리고 상식

어느 날 고등학생인 둘째가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다. 저소득층 자녀들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무료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신청서이다.


“너는 우리가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하니?”


둘째와 언쟁이 시작되었다. 둘째의 논리는 우리보다 훨씬 부잣집 아이들도 애플리케이션을 적당히 써서 공짜 점심을 먹는데, 그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우리가 왜 돈을 내고 점심을 사 먹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소득을 적는 칸에 적당히 수입을 낮추어서 써도 특별히 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줄여서 쓰면 된다, 그것이 둘째의 주장이었다.


“네가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아빠 보고 거짓말을 하라는 거지?”


둘째에게 단호하게 말해 주었다.


“돈 줄 테니까 사서 먹던지, 억울하면 도시락을 싸 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정책을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은 죄야. 너희 학교 아이들이 모두 그렇게 해서 공짜밥을 먹더라도 아빠는 그렇게 할 순 없어.”


분명히 다섯 개를 샀는데 집에 와서 영수증을 확인하니 네 개 값만 받은 가게로 그 한 개 값을 더 내러 굳이 다시 차를 돌리는 아빠를 이길 순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둘째가 포기를 했다. 아빠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눈 질끈 감고 숫자 한 두 개 고쳐 써서 하루에 $3짜리 학교 점심 공짜로 먹게 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인줄 안다. 더 나가서, 매년 세금보고할 때 마음만 먹으면 소득 적당히 누락시켜서 돈 하나도 안 들고 대학 다니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빠가 그렇게 해서 공짜 대학 보내고, 공짜 점심 먹게 하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얼굴이 설 것이며, 어떻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 것이며, 나중에 아이들이 저들 아이들에게 어떻게 정직을 가르칠 것인가.


연 매출 몇 천 만불짜리 비즈니스에 좋은 집 살면서, 고급차 굴리고, 사고 싶은 것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사고,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놀러 가는 가정이 1년에 $10,000씩 정부 보조받아서 오바마케어 건강보험 들면서 되려 혜택 못 받는 사람들에게 능력 없다고 나무란다. 연방정부에서 주는 대학 학자금 보조는 약삭빠른 집들 먼저 다 가져가 버려서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대상자들은 누락되기 일쑤다.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아직 사회에 나가지 못한 둘째가 이미 그런 불합리한 시스템을 경험하고, 또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 4년 전이었다. 해외에서 보는 한국은 객관적일 수도, 반대로 더 편협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소위 극렬 "문빠"는 아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해 온 일들을 보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쪽이다. 임기를 불과 1년 남짓 남겨 둔 시점에서 그동안 보여 준 그의 소 걸음이 답답하고 어정쩡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신문에 나온 한 꼭지짜리 기사를 아직도 잊지 않는다. 그가 가난한 인권 변호사 시절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한 부인에게 청약저축은 집 없는 사람들 집 마련하려고 만든 제도인데 집 있는 우리가 그거 하면 안 된다고 나무랐다는 기사. 거기서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적어도 한 가지 공약만은 지켜 주리라 믿었다.


정직과 원칙,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비선 실세들에게 온 나라가 통째로 수십 년간 농락을 당했다.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 키우고, 조그만 아파트 한 칸이라도 마련하려고 밤낮없이 일하는 서민들은 망연자실 자괴감에 빠졌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물에 빠져서 죽었는데 7년이 다 된 지금까지 정확한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바른 소리 한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원을 끊고 압력을 행사했다. 언론을 돈과 권력으로 압박해서 온 국민들 눈과 귀를 멀게 만들었고, 권력과 돈 앞에서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히는 모멸감을 맛보아야 했다.


딸 같은 아이 무릎에 앉혀 놓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뒷면에는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 인구의 1/3을 넘고, 폐지를 주워 팔아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극빈층 노인들이 자그마치 150만 명이 넘는 사회. 말 안 듣는 사람들은 무조건 빨갱이 멍에를 씌워 앞길을 막고, 집권세력에 반대하면 무조건 친북, 종북 굴레를 씌우던 나라. 그러면서 나라 밖에서는 온갖 굴욕적인 외교로 국민들을 참담하게 만들던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만 되면 무엇에 홀린 것처럼 1번을 찍는 나라.


정치인들이 하지 못하니 참다못한 시민들이 나섰다.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탄핵시키고, 정권을 바꿨다. 그 과정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며, 누구도 하지 못했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 냈다. 세계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민주주의를 완성시켰던 미국이나 그 어떤 유럽 국가들도 해 내지 못한 일이었다. 문재인을 찍은 투표지들은 도장이 선 하나 넘어간 것이 없었다고 한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들이었겠는지! 그만큼 시민들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 대해 갈급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상적인 사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부족하지 않게 살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학교 가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직장 잡을 수 있고, 세금 열심히 잘 내면 노후가 걱정되지 않는 나라. 아이들 안심하고 학교에 맡기고 일하러 가도 되는 나라. 바른말 들어주고, 선한 일 한 사람에겐 상 주고, 범죄자들은 정당한 죗값 치르게 하는 나라. 그런 나라는 정직과 원칙, 그리고 상식이라는 지극히 기초적인 가치들이 대접받고 적용되는 사회라야 가능하다.


5년 동안 대통령 한 사람이 그것을 이루어 내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10년, 20년,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세상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직이라는 가치가 가장 대접받는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살면서 ‘아빠가 태어난 나라가 썩 괜찮은 나라구나’라고 훗날에 아이들이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짜 점심을 못 먹게 했던 아빠를 그때쯤은 이해해 주리라 기대한다.


* 타이틀에 사용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제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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