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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Sep 30. 2022

배심원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영미권에서 채택하고 있는 Jury System이라고 불리는 배심원제도는 오랜 전통을 가진 형사, 사법제도로 미국과 영국, 스페인, 러시아 등에서 채택하고 있고,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은 배심원 제도를 더 강화한 참심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배심원제는 대배심원(Grand Jury)과 소배심원(Petit or Trial Jury) 제도 등 두 가지가 있으며 법조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 사법절차에 가담하여 결정을 내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 연방헌법은 6개월 이상의 구금형에 해당하는 죄로 기소된 사람은 배심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배심원 제도란 법조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 재판 과정에 참여해 범죄의 사실 여부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사법제도이다. 재판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배심원제도는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행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많은 제도이다.


과거 풋볼스타 OJ Simpson이 이 배심원 평결에서 평결 불일치로 무죄가 되었던 것을 가지고 배심원 제도의 맹점과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유죄로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이었지 배심원들의 판단에 어떠한 인종적, 정치적 영향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물론 백인 아내를 살해했다는 흑인 풋볼스타의 유죄 혐의를 믿는 대다수의 여론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을 뿐이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 없이 무작위로 선택된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사건에 대해 법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법이라는 것도 일반 상식이라는 기본 토대 위에 문서화된 것이고, 재판 과정에서 검사 측과 변호인 측의 공방을 모두 듣고, 충분한 자료도 주어지며, 배심원들끼리 따로 모여 회의도 한다. 배심원 선정도 아주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미국의 시민은 누구나 배심원 제도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진다. 정당한 이유 없이 배심원 참여를 거부하면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먼저 배심원은 차량 관리국에 등록된 만 18세 이상의 성인들 중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무작위 선별되고 각자 개인적으로 통지서를 받는다. 그러나 통지를 받는다고 배심원석에 누구나 앉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배심원 통보를 받고 법원에 출두하면 먼저 상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와 있음에 깜짝 놀라게 된다. 보통 일반 Trial (소배심)재판에는 12명의 배심원들이 필요한데, 재판 과정에서 급한 용무로 결원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명의 예비배심원을 추가로 뽑는다. 그래서 총 14명의 일반 시민이 배심원석에 앉게 되며 예비배심원 2명은 전체 재판 과정에 배석할 수는 있지만 결원이 되기 전에는 판결에 참여할 수 없다.


배심원을 선정하는 과정도 녹록지 않다. 14명의 배심원을 선별하기 위해서 약 120-150명 정도의 일반시민이 출두하게 되는데, 이들은 법정에 앉아 하루 2-4시간, 3-5일간 양측 검사, 변호사의 질문에 대답하고, 인격적 결함이 있는지, 재판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소양을 갖췄는지, 인종차별적이거나 선민사상을 가지지 않았는지 등등에 대해 screening (선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검사 측과 변호사 측이 모두 동의하는 사람만이 배심원석에 앉게 된다. 필자가 배심원에 참여한 재판의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재미있는 대화 몇 토막을 소개한다. 


검사: 스미스 씨, 18세에서 21세 미만이 충분히 성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민: 아닙니다. 걔들이 무슨 어른이에요. 그들은 몸만 컸지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어요.
검사: 저 사람 탈락시켜 주세요.
판사: 스미스 씨, 집에 가셔도 좋습니다.


변호사: 엘리엇 씨, 결혼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민: 저는 독신입니다.
변호사: 독신인지 묻는 것이 아니고 결혼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습니다.
시민: 왜 결혼을 해서 한 여자에게 평생 묶여 살아야 하죠? 결혼제도는 한 여자하고만 섹스를 하라는 악습입니다.
변호사: 알겠습니다. 판사님, 엘리엇 씨 탈락시켜 주세요.
판사: 엘리엇 씨, 집에 가셔도 좋습니다.
시민: 왜요, 독신이면 배심원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당신들은 지금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겁니다.
판사: 미국 법원은 기소 측과 변호 측의 판단에 따라 배심원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나가 주세요.


검사: 윌슨 씨, 직업이 뭔가요?
시민: 네 저는 방송국에서 메이크업하는 일을 합니다.
검사: 오, 그래요? 어떤 프로그램을 주로 하시나요?
시민: 저는 CSI라는 프로그램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 특수분장을 합니다.
검사: 그러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보는 일이 일반 사람들보다는 덜 무섭겠네요?
시민: 글쎄요, 실제로 죽은 사람을 보진 못해서…
변호사: 판사님, 지금 검사는 사건에 힌트를 줄 수 있는 질문들을 하고 있습니다.
판사: 인정합니다. 검사는 다른 배심원들에게 bias(영향)를 줄 수 있는 질문들을 삼가해 주세요.
시민: 이 사건이 살인사건인가 보죠?
판사: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변호사: 판사님, 저분 탈락시켜 주세요.
판사: 윌슨 씨, 집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배심원 선정 장업이 끝날 때까지 시민들은 자신들이 참여할 재판이 어떤 사건인지 알지 못한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렇게 하나씩 걸러 내는 작업은 고되고,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법원은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이러한 과정들을 꿋꿋이 감수한다. 배심원에 참여하는 동안 일을 하지 못함으로 생기는 급여 손실은 직장에서 보장해 주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배심원 참여 기간 동안 점심 식사비와 주차비 정도를 보상해 줄 뿐이다. 직장인이 아닌 자영업자는 일을 하지 못함으로 입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육아문제, 경제적 문제 등으로 배심원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은 정당한 사유서를 제출해서 면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배심원으로 봉사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와 명예로 여긴다.



대배심원(Grand Jury)은 검사의 기능을 갖는다. 즉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15 - 23명(연방법원은 16 - 23명)으로 구성되는 대배심원은 피고(용의자)에 대한 검사의 기소장을 중심으로 비공개적으로 조사를 실시하여, 기소 여부를 담당 검사에게 통보한다. 이 과정에서 대배심원은 여러 증인들을 채택하여 증언을 듣지만 용의자를 직접 만나지는 않는다. 담당 검사는 대배심원의 기소 결정의 승복하여야 하며 승복하지 않을 경우 항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소배심원제도(Trial Jury)는 대배심원 제도와는 달리 재판 과정에서 직접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를 결정한다. 12명의 만장일치로 유무죄를 결정하는데, 판사는 유죄가 나올 경우 법적 양형 기준에 따라 형량을 정할 뿐이다.  만장일치가 되지 않는 경우를 Hung Jury(의견 불일치)라고 하는데, 이 경우 판사는 다시 14명의 배심원을 소집하여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할 수도 있고, 검사가 재기소를 포기하면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는다. 소배심원은 대배심원이 비공개 비밀리에 진행되는 것과는 달리 재판 과정에 참석하여 검사 변호인 피고 원고 증인들 등의 증언들을 듣고 Jury Room에 모여서 유무죄를 결정한다. 배심원 중 한 명이 이 결정을 공개재판에서 판사에게 전달한다.


적어도 배심원석에 앉게 되는 사람은 보편타당한 기본적 지성과 인성, 한쪽으로 휩쓸리지 않는 중립성, 감정보다는 사실관계(facts)에 우선한 판단 능력 등을 갖춘 사람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격이 특이하거나 모난 사람들, 감정이입이 심한 사람들은 배심원 선정 작업에서 거의 90% 이상 탈락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필자가 미국 법원의 배심원석에 앉아 보았던 경험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한 일이라 스스로 평가한다. 물론 배심원 선서 때 약속한 대로 필자가 참여했던 재판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참여했던 나를 비롯한 나머지 11명의 배심원들은 정말 열심히, 그리고 냉정하게 듣고, 의논하고, 판단했다. Jury Room에서 약간의 언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한 증거와 자료에 입각해서 객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배심원제는 상당히 합리적인 법제도이다. 개인의 의견이 아닌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주의에 입각하여 일반 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많은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처럼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외부 압력에 의해 판결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도입이 시급하다고 본다. 다만 그 과정이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까지는 상당한 검토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2008년부터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참여 재판제도라는 한국식 배심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영미의 배심제와 대륙의 참심제 중 어느 것을 도입할지 아니면 혼합제도를 도입할지 고민 중에 있다고 하지만 현행 헌법상 적법한 법률에 의거하여 중립적인 재판을 받을 시민들의 권리가 실현되는 일은 아직 멀어만 보인다.



죄지은 사람은 벌 받고, 무고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극히 기본적인 보편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 국가는 국민을 통제할 기능을 상실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필자 또래들의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에 두엇은 곧바로 ‘판검사’라고 대답할 만큼 검사는 출세의 심볼이자 권력과 부귀영화로 직진하는 일방통행로 같은 직업이었다. 대한민국의 검찰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아무리 중한 범죄를 저질러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반대로 빵 하나를 훔쳐도 검사에게 밉보이면 중형을 면치 못한다. 오죽하면 기소로 명성을 얻고 덮는 수사로 부를 얻는다는 말까지 있을까.


대한민국의 검사가 소위 ‘정의’와 ‘공정’을 상징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다. 그 대신 ‘칼잡이’, ‘영감님,’ ‘조폭 집단’ 등의 별명을 가진 국민적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 부조리를 과연 무엇으로 부술 것인가. 어떤 형태든 한국의 사법제도는 개선되어야 하고 검찰은 개혁되어야 한다. 검찰개혁의 가장 우선과제는 기소권과 수사권의 완전 분리이다. 배심원 제도는 그 이후에나 도입이 가능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가치, 즉 ‘공정과 상식’은 불과 100여 일 만에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오히려 가장 불공정하고 가장 상식적이지 못한 절대적 검찰 권력을 앞세워 국민들을 겁박하고 있는 정부의 모습을 본다. 수십 가지 범죄 의혹으로 얼룩진 대통령 내외. 역시 각종 비리와 범죄 은닉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집권당 의원들과 정부 관료들. 국민들은 권력의 곁에서 빌붙을 것인지 아니면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그들의 칼 앞에 납작 엎드려 살아가야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원했던 검찰개혁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이런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12세기 무렵 영국에서 시작된 초기의 배심원 제도는 당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교회와 봉건 영주들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권력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을 잃게 되고 그에 따라 억울한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을 900 년 전 영국의 민주주의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과감히 개혁을 시도했던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최소한 9백 년 전 영국의 수준을 따라갈 만한 용기와 결단력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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