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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Feb 08. 2024

가불 아시아 최강

무너진 한국 축구와 한국 사회. 누구의 책임인가?

축구 진 것에 대해 모든 원망이 클린스만 감독 한 사람에게 쏟아지고 있다. 과연 감독 하나 바꾼다고 해서 한국 축구가 달라질까?


비슷한 질문을 던져 보자. 과연 지금의 철딱서니 없는 대통령 한 사람(두 사람?) 바꾼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달라질까?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소위 '대가리'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 왔던 고전적인 방법 중 하나지만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린 이미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는 월드컵 대회 중간에도 감독을 경질한 전력이 있는 나라이다.) 리더가 물러나고 그 뒤를 이어받은 리더는 그전 리더가 한 잘못만 답습하지 않으면 된다는 안일함에 빠지기 쉽다. 근본적인 문제에 칼을 대지 않는 이상 비슷한 결과가 다시 나올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반면 전체가 책임을 나누어 지는 것은 많은 차이와 발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한 사람이 잘못했을 때 그룹 구성원 전체가 책임을 지는 일본의 '연대책임' 문화하고는 다르다. 


이번 아시안컵 축구 준결승전을 시청한 나로서는 '감독책임'이라는 여론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체력의 열세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수비는 시종일관 공을 멀리 차내기에 바빴고, 중원은 의미 없이 공을 돌리다가 빼앗기기 일쑤였으며, 공격수들은 고집스럽게 같은 패턴만을 반복했다. 이런 우리 대표팀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호주와 요르단은 몸싸움 좋고 투지가 강한 4-5명의 수비수들을 일자로 세워 우리 공격수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철저히 막았다. 호주전 승리는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 3명의 개인 능력이 빛을 발했을 뿐이었고, 운이 좋았다.


유럽에서 펄펄 나는 선수들이지만 축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축구의 신이라는 메시나 호날두조차조 국가대표로 뛰는 경기에선 소속팀에서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린 축협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 한국사회가 질질 끌듯이 매달고 가고 있는 고질적 병폐와 너무나 많이 닮았다.


나는 현재 대통령 부부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다.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국민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사람들이 국가 최고의 수장 자리에 앉아 온갖 기행과 낮 뜨거운 짓들을 서슴없이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1위, 출산율은 꼴찌라는 것이 대통령 책임은 아니다. 대통령 바꾸면 갑자기 자살하려던 사람들에게 삶에 희망이 생기고, 안 생기던 애들이 줄줄 태어날 리가 없다. 오히려 그런 모자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서 개선의 기회를 없애거나 더디게 만든 사람들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곳곳 깊숙히 뿌리박은 사회 부조리들과 극심한 이기주의,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천박한 자본중심 계급 사회, 조기교육과 사교육 없이는 좋은 학교에 진학할 꿈도 못 꾸는 망가진 교육 시스템, 0.01%도 안 되는 극소수 삐뚤어진 엘리트 집단이 들었다 놓았다 하는 엉터리 사법제도, 노인인구 9백만 중 빈곤율이 40%가 넘고, 폐지를 주워야만 먹고살 수 있는 노인들이 100만 명이 넘는 국가로 퇴락한 것은 지금 대통령 훨씬 이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지나칠 정도의 급성장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심각한 착각 속에 빠져 있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몇 사람에게 책임을 떠 넘기고 묻어 버리면서 대충 모면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절망은 계속 반복될 뿐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20대 대선 결과를 지켜보며 썼다는 [가불선진국]이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보면 충분한 값을 지불하지 않은 채 세워진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가 나중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우려의 내용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지금 우리가 세계 경제 10위의 선진국이라고 자위하는 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과도 같고, "우리가 아시아 최강"이라며 잔뜩 바람 들어간 한국 축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한마디로 "뽕"맞은 상태인 것이다.


박지성, 손흥민 등으로 인해 우리 눈높이는 자연스럽게 유럽 프리미어 리그에 세트 되어 있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보는 짤막한 30초짜리 short 몇 개만 보아도 한국 축구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축구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국가대항전이므로 응원과 기대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물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조XX, 황XX, 김XX 등 선수들에게 울분을 토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한 선수가 어디 있겠으며, 대표팀에 합류할만한 실력이 되지 않음에도 대표선수도 뛰고 있는 것이 그 선수의 잘못이라고 몰아 부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방금 이란과 카타르의 준결승전이 끝났다. 우리가 침대축구라고 깔보던 중동축구의 수준이 저 정도로 올라왔다는 것에 놀라움과 칭찬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이제는 저들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벤치마킹하며,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만간 아시아 호랑이에서 아시아 동네북으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서 있는 우리 위치에 대해서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축구는 더 이상 아시아 최강이 아니며, 한국인의 정치의식 수준은 아직 중남미, 동남아시아 독재 개발도상국들과 비교해도 부끄러운 처참한 상태이며, 한국언론의 신뢰도가 꼴찌 수준이라는 것도, IT, 전기차 경제강국이라는 이면에 날마다 끼니 걱정을 하고, 아이들 생일 때 외식 한 번 시켜 주려면 손을 벌벌 떨어야 하는 극빈층이 두텁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 등에 우리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그보다 더 솔직해져야 하는 부분은 우리의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방관에 가까운 무관심 등이 그러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축구는 아시아 최강이 아니다. 대통령 바뀐다고 갑자기 선진국 되지 않고, 감독 바꾼다고 갑자기 유럽 남미축구팀처럼 바뀌지 않는다. 책임과 의무는 구성원 모두가 나누어 져야 한다. 한국사회와 한국 축구를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데 대하여 당신은 책임에서 100%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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