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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Feb 21. 2024

운동선수에게 거는 기대

그리고 이슈 하나에 온 국민이 몰빵 하는 나라

타이거 우즈가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타이거 우즈는 그의 메이저 우승컵 숫자만큼이나 많은 여인들과 혼외정사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덕성 문제로만 따진다면 그는 개방적이라는 미국인들의 기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쓰레기이다.
 
타이거 우즈가 만일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법적인 문제보다 여론의 조리돌림을 견디지 못해 지금쯤 일찌감치 자살했거나, 폐인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저만치 잊혀진 평범한 중년의 아저씨가 돼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운동선수들, 연예인들 등에게서 평균 이상, 아니 탑 1%에 들만한 인성과 도덕성, 겸손함, 애국심 등등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을 기대한다. 그들에게서 지나칠 정도의 대리만족을 얻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보다 훨씬 높은 수입과 명예를 얻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수준의 스탠다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일까?


타이거 우즈는 애국심 때문에 골프를 치지 않았다. 토너먼트 우승 82회, 메이저 우승 15회의 놀라운 대기록들도 그 자신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지 나라를 위해, 타인을 위해, 혹은 미국 골프의 발전이라는 대의적 명분을 위해 세워진 것들이 아니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그의 골프에 대한 재능과 열정,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는 기막힌 샷들이나, 우승 퍼트를 넣은 후에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지, 마누라 두고 여러 여자들하고 바람피운 파렴치한 놈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골프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찰리)에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그와, 아내를 두고 열댓 명 여자들과 바람피운 그는 얼마나 상반된 이미지인가?


한국인들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을 향한 기대치는 어떤가? 그들도 우리처럼 화내고, 실수하고, 때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으로 욕먹고, 고소하고 고소당하고, 먹고 똥 싸는 똑같은 인간들이라는 점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인들의 기준으로는 그들은 고고한 학같은 성품과, 털어도 먼지 한 톨 안 나올 청렴성, 오른뺨을 맞으면 왼 뺨을 들이대는 온순함과 정의를 위해 목숨 바치는 공명심까지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


하지만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한국인의 이런 습성 – 특히 소셜미디어 의존율이 전 세계 1위인 – 이 지극히 선택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저 여론이 몰아가는 대로 마치 만원 버스 운전기사가 조리질하면 이리 가서 쾅, 저리 가서 쿵, 부딪히듯 부화뇌동한다. 여당 주요 인사의 아들이 고작 몇 년 일하고 50억의 퇴직금을 받아 처먹어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는 반면 대학 입학에 적용이 되지도 않은 표창장쪼가리 한 장에 가족 모두에게 [죄인] 딱지를 붙이는 일에는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야당인사의 부인에게는 지나치도록 청렴과 결백을 강조하지만 어떤 대통령부인은 주가조작으로 수십억을 해먹은 의혹에도, 과거 고급 콜걸 출신이었다는 의혹에도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는다.

축구 진 것에 나라를 잃은 것처럼 비분강개하고 짱돌 던질 대상을 찾는 일에 이리떼처럼 온 나라가 눈들을 시뻘겋게 뜨고 달려든다.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 없는 일에 이렇게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민족일 줄이야! 그런데 바로 옆나라에서 징그러울 정도로 집요하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도,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해도, 그것은 정치적인 일이라며 애써 외면한다. 정작 분개해야 할 일들에는 놀랄만큼 침착(?)하고, 숨쉬는데 지장 없는 일들엔 생사가 걸린 것만큼 흥분하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이강인은 이제 고작 스물두 살 일 뿐이다. 스물두 살 축구선수에게 우리는 축구 잘하는 것만 기대하면 된다. 그를 서른두 살 손흥민과 똑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어쩌면 당신이 알고 있는 손흥민조차도 언론과 여론을 통해 학습된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나는 손흥민을 모른다. 그저 그가 축구에 대해 남다른 소질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의 아버지가 다른 선수들과는 차별된 교육을 시켰다는 것 정도만 알 뿐, 그의 내면세계에 대해선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강인과 손흥민을 [축구선수]로만 본다. 축구 잘하면 응원할 것이고, 못하면 또 못하는 대로 이해해 줄 것이다. 그들에게서 일반인의 수준을 뛰어넘는 도덕성이나 심오한 철학, 특별한 애국심 등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실수(?)로 한 사람이 평생 먹을 욕의 만 배는 먹었을 그가 인스타 계정에 사과 글을 올렸다. 자의든 타의든 이 글을 쓰면서 고작 우리 작은아들 나이도 안 되는 스물두 살 청년이 지난 몇 주 동안 느꼈을 곤혹스러운 감정과 분노, 후회 등등을 생각해 보니 마음이 짠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이강인은 쓰레기, 걔는 혼 좀 나 봐야 돼”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스물두 살 때, 어떤 정신적 성숙의 상태였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아마도 당신에겐 이런 사과글을 쓸 용기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내 장담할 수 있다.


운동선수는 운동선수일 뿐이다. 우리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엔터테이너들이다. 잘하면 응원하고, 못하면 격려해 주거나 그도 싫으면 관심을 끄면 된다. 지나친 감정이입은 당신의 정신건강에 이롭지 못하다. 박찬호가 IMF 때 온 국민에게 희망을 준 야구선수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사람들이 대박 계약 후에는 [먹튀]라고 얼마나 욕을 했는지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가 덩치 큰 메이저리그 홈런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주먹을 불끈 쥘 때 당신이 함께 느꼈던 카타르시스와, 연봉 값도 못하면서 나라 망신 시킨다고 욕하던 모습이 얼마나 서로 이율배반적이었는지 생각해 보라.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언론의 잘못도 크다. 그러나 그만큼 속고 학습을 당했으면서도 아직도 그 냄새나는 언론의 선동질에 매번 당하기만 하는 당신의 의식 수준은 스물두 살의 이강인에 비해 얼만큼이나 더 성숙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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