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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Feb 17. 2021

자식은 대리만족의 도구가 아니다.

9학년 막내딸이 밤늦도록 공부를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불쌍하다.


내가 막내 나이 때는 놀기만 했다. 다행히 머리가 나쁘진 않았던지 그렇게 놀다가 시험 때만 벼락치기해도 반에서 10등 안에는 들었다. 그 대신 시간이 나면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닥치는 대로 읽고, 기타 만지작거리고,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대학을 갔고 직장도 다녔고, 삶의 터전도 외국으로 옮겼고, 사업도 해 봤고, 망하기도 해 봤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심심하진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다. 마누라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혼하자는 소리 않고 살아 주고 있다. 애들은 돈은 잘 못 벌지만 아직까지는 가정적이고, 뭐 망가지면 툭툭 금방 고쳐 주며 잘난 척하는 아빠를 좋아한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아이들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부모들이 자식한테 끌려다니고 있는 건지, 자식들이 끌려다니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애들이 공부 잘하길 바라는 부모들 맘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이 지지리도 공부 못했던 부모의 한풀이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애가 아니라면 아이 머리 나쁜 것은 100% 부모 탓이다.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뺑뺑이 돌린다고 돌이 금이 되진 않는다.


나는, 잘나지 못한 내 인생에 후회가 있다 하더라도, 내 자식들이 나보다 잘되길 바라며 들볶고 싶지 않다. 주위에 보면 그렇게 빡쎄게 공부시켜 Cornell 졸업시켜 놨더니 한인타운 한복판에서 교통사고, 음주운전 뒤처리해주며 돈 잘 버는 변호사 돼 있고, 그렇게 학원으로 밤낮없이 뺑뺑이 돌려서 Harvard 나온 애들이 할 것 없어서 자기들 SAT 점수 간판으로 내걸고 학원 장사하고 있다.


난 내 아이들이 그렇게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좋은 직장 찾아주기 위해, 나중에 시집 장가 잘 보내기 위해, 좋은 차 몰고 좋은 집에 살게 해 주기 위해 공부, 공부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게 키워 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얼마나 읽었으며, 어딜 여행했고,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부모와는 어떤 기억을 나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쟤는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 훨씬 못했고, 싸가지도 없고 날라리였는데 왜 지금 나보다 잘 살까를 억울해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 아이들은 내가 교과서에 코를 박고 있을 때 놀면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자극받고, 생각의 폭을 넓혔던 거다. 그 아이들이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을 지금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억울해하지 않기 바란다.


예전 직장 생활할 때 Steve라는 나이 지긋한 유태계 미국인이 있었다. UCLA에 합격했는데 아버지가 학교 1년 늦게 가더라도 지금 가지 않으면 기회가 없으니 나갔다 오라면서 비행기 티켓을 끊어 주더란다. 그 비행기 티켓이라는 것이 왕복도 아니고, A에서 B, B에서 C로 그렇게 거점을 옮겨 다니는 hopper ticket이었다. 그런데 여행 경비는 정말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주더라고. 어쨌든 18살 나이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8개월 동안 남미로, 중동으로, 유럽으로, 동남아로 열여섯 개 나라를 돌아다녔단다. 인도에서는 돈이 떨어져서 등짐도 져 보고, 남미에서는 어눌한 스페인어로 통역일까지 하면서 쪽잠 자가며 여행했던 8개월이 자기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금 같은 시간이라고 했다.


내게도 비슷한 기회가 있었다. 큰 녀석이 대학 1년을 마쳤을 때 네팔에서 큰 지진(2014년)이 났었다. 나는 아이에게 학교를 한 두 학기쯤 쉬어도 좋으니 거기 가서 지진 복구 자원봉사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물론 스티브의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하지만 아이와 엄마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나도 솔직히 열아홉 살 아이를 밖으로 내 몰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막내 네 살때. Carpinteria State Beach에서


설치미술작가 이불(李昢, https://g.co/kgs/uc7jdb)씨는 아이가 50살이 넘어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돌아 보며 성공했다고 스스로에게 축하해 줄 수 있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지난 50여년을 돌아 보니, 나는 그다지 성공한 인생을 산 것 같지는 않다. 일류 대학도 못 나왔고, 큰돈도 못 벌어 봤다.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는 커녕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내 아이들은 꿈이 있는 아이들로, 의식이 있는 아이들로, 그리고 자기 주관이 확고한 아이들로 자라게 해 주고 싶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당당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며 가슴 아파할 줄 아는 아이들로.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멘토가 되어 줄 수 있는 아이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인생의 황혼에 접어 들었을 때, '이만하면 괜찮게 살았구나.' 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아이들로 컸으면 참 좋겠다.


잘 사는 것의 기준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다. 가진 것이 많다는 것(Rich)과 '잘 사는 것'은 분명 별개의 문제다. 내 아이들은 소유한 것이 아닌, 정말 '사람답게 사는 것'에서 행복을 찾아낼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게 해 주고 싶다. 내가 그렇게 자라라고 시켜서 되는 것은 아니다. 저절로 큰다. 아니, 하나님이 키워 주시는 거다. 그래서 맘껏 놀려도 된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이 끝없이 생각하고, 번민하며, 삶이라는 명제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적당한 자극을 주는 일이 전부임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들은 내 소유가 아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잠시 지켜 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 지켜 주고 있는 동안을, 그리고 홀로 서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을 나는 '축복의 시간'이라 부른다.



사용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제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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