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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Feb 17. 2021

Family

오래된 일이지만, 둘째와 둘째의 친구들 둘을 데리고 Six Flags(놀이공원)에 갔던 적이 있었다. 둘째 생일에 베스트 프렌드 둘을 데리고 토요일 하루 꼬마들과 시간을 보냈다.


“난 형이 둘, 누나가 하나 있는데요, 나랑 아빠가 다른 큰 형은 엄마의 전 남편 집에서 살고요, 엄마가 다른 작은 형은 아빠의 전부인하고 살아요. 그리고, 누나하고 나하고도 엄마가 다른데요, 오레곤에서 할머니랑 살아요.”


“그러니, 그렇구나…”


도대체 머릿속으로 관계도가 그려지지 않는다. 또다른 한 녀석도 질세라 끼어든다.


“난요, 엄마가 남자 친구랑 어디 놀러 가는 바람에 이번 주말은 아빠네서 자야 돼요.”


“누나가 밥은 잘해주니?”


“누구요? 난 누나 없어요.”


“아까 머리 땋은 그 귀여운 애 말이야. 걔가 누나 아니니?”


“아, 크리스틴요? 울 아빠 여자 친구예요.”


 “어, 그렇구나…”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집안 얘기를 풀어놓는 열 살짜리 꼬마들. 이 녀석들 입에서 나오는 가족관계라는 것이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어서 나는 뭐라고 대꾸할 말을 잊었다.


녀석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둘째가 차 안에서 뜬금없이 고맙다고 했다. 엄마랑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살아서 고맙다고. 자기 친구들은 부모가 이혼해서 주말이면 아빠 집으로, 엄마 집으로, 할머니 집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데 자기는 그렇지 않아서 참 고맙다고.


미국 살면서 그런 에피소드는 참 흔하다. 더 오래전, 큰 녀석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Parent Conference에 간 일이 있다. 선생님과 개별 만남을 갖기 전에 부모들이 모두 한 교실에 앉아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 옆에는 여자 하나가 남자 둘을 데리고 앉아 있다. 그들 차례가 되어 소개를 하는데 눈치없는 고개가 그쪽으로 휙 돌아갔다.


“저는 Tyler 엄마입니다. 이쪽은 제 남편이고요, 이쪽은 Tyler 아빠입니다.”


아이의 컨퍼런스에 지금 남편과 이혼한 전 남편을 대동하고 온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나로선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혼하면 그대로 원수지간이 되는 게 우리 정서 아닌가. 아이들도 부모가 이혼하면 결손가정 자녀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것처럼.


한국도 이혼율이 계속 올라가는 추세라지만 미국 사람들은 한 여자를 만나 평생을 같이 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 아이들도 부모가 이혼하는 것에 대해 우리 한국사람들이 받는 만큼의 정서적 충격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몇 년 전 결혼 25주년을 맞아 집사람과 유럽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했더니 내 미국 친구 하는 말이 걸작이다.


“25 years, that is so Asian!”


한 사람의 배우자와 평생을 해로하는 것이 지극히 동양스럽다는 내 친구의 동양적 결혼관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은 이제는 많이 변했을 것 같다. ‘한 번 시집 가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돼라’는 유교적 정서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도 불구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상대 배우자에 대한 미움이 지나쳐 영영 회복되지 못할 것 같아 보이는 커플들이 아이들 때문에, 체면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의미 없는 결혼생활을 지탱해 나가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끼리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아 가며 흉진 가슴을 여미며 살아가고 있다. 차라리 각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서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나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혼하세요'라고 권유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나 용납이 되지 않는 미국 가정들의 모습. 그러나 혈연보다는 다분히 '관계'로 인해 엮어진 이들의 'family'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한국 사람들보다 행복해 보일 때가 많다. 반면 끈끈한 혈연으로 묶여 있지만 밤늦게까지 죽도록 일만 하는 부모와 제멋대로 방치되어 닫힌 방문 안에서 게임만 하는 아이들, 부부간에, 자녀와의 대화가 실종된 많은 한국인 family들의 모습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가족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의 단위이다. 그러나 이제 가족이라는 타이틀은 서로 다른 남남이 만나 사랑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사는 근본 제도로 발생한 구성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 기본 제도와 핏줄을 기초로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family가 될 수 있게 우리의 가치관과 문화가 바뀌었다.


There is no place like home.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함께 살며 서로에게 힘과 위안이 돼 주는 작은 사회를 만드는 것. 모든 구성원들의 책임이고 그 구성원들이 모두 책임을 다하는 그곳을 우리는 진정한 family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사용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제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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