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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Feb 17. 2021

브런치 입성

30여 년 전, 함께 일하던 포토그래퍼가 스케줄을 펑크 내는 바람에 얼떨결에 잡은 카메라는 이제는 내 몸의 일부처럼 되어 버렸다. 한 컷 찍고 나면 지이잉- 하고 다음 필름이 로딩될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했던 펜탁스 필름 카메라로 시작해 수동형 필름 카메라로, 다시 고급형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지금 십수 년째 가지고 있는 30만 컷을 넘긴 Canon 1Ds Mark II 바디는 걸핏하면 액정이 꺼져 버리기 일쑤다. 사진의 해상도도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만도 못하다. 그래도 그 손때 묻고 무거운 고물을 버리지 못하고 늘 차에 가지고 다니는 건 이 녀석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유의 감성과, 언제 어디서 내 눈에 담고 싶은 그 순간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소위 '업소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은 의례 사진작가냐고 물어본다. 나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에이, 작가는 무슨... 그냥 취밉니다."


30년간 사진을 찍었고, 교회 사람들에게 사진 클래스를 열어 줄 정도면 이젠 작가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겠지 싶지만 굳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은 왠지 진짜 작가님들에 대한 불경을 저지르는 것 같아서이다. 게나 고둥이나 전부 다 작가면 사진이 생업인 진짜 작가님들은 무어라 불러야 할지 죄송하기도 하고.



사실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고, 스마트폰 카메라들의 해상도가 어마어마하게 좋아진 요즘, 비전문가들도 전문가 뺨치게 멋진 색의 표현과 구도, 그리고 스토리 텔링 등이 잘 구현된 사진들을 찍는다. 그렇다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전문가와 비전문가, 작가와 취미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활자중독이었다. 자리에 앉으면 무언가를 손에 잡고 읽었다.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 뭘 그리거나 끄적거리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뭘 끄적거리는 것은 취미라기보다 일종의 버릇 같은 거였는데 그래도 글재주는 있었는지 백일장 장원도 여러 번 해 보고, 고등학교 때는 친구의 간질거리는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기도 해 보고, 대학 때는 사내보 기자와, 학과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편집장도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다. 광고대행사에 들어가서도 글 쓰는 버릇은 먹고사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글 쓰는 일은 소년, 청년기를 거쳐 지금까지 사진과 함께 나의 일부분으로 남았다.


80년대 말, 스물몇 살 때 처음으로 퍼스널 컴퓨터라는 것을 접했다. XT를 시작으로 1년 후엔 20MB 하드디스크를 장착한 Mac Plus(사진)가 내 책상에 놓였다. 종이 없이도 내가 쓴 글들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나중에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혁명과도 같았다. 지금 후회가 되는 것 하나는, 처음 컴퓨터를 만졌을 때 타자를 배워놓지 못한 일이다. 그렇게 그냥 독수리 타법으로 굳어져 버렸고, 지금은 열 손가락 중 다섯 개(양 손 엄지와 검지에 오른손 중지 하나를 더한)만 가지고도 일분에 300타 이상을 치는 신기의 독수리타법을 보유하게 되었다. 키보드에 한글 자판이 붙어 있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옆에서 보면 참 모양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86년도에 출시되어서 90년에 단종된 Mac Plus. 출시되던 첫 해 가격이 무려 $2500이었다.


브런치를 알게 된 것은 불과 4개월 전이다.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 공유한 글을 읽고 따라 들어갔다가 알게 된 브런치는 COVID-19으로 집구석이 오피스가 돼버린 활자중독 환자에게는 신세계 같은 곳이었다. 우선 글들의 퀄리티가 달랐다. 어지러운 배너 광고도 없었다. 에세이, 시사, 전문분야, 여행, 책 소개 등등 읽을 것들이 넘쳐났다. 그동안 브런치 책 소개글 때문에 사서 읽은 책들도 꽤 된다. 작년 4월부터 재택근무를 했으니 거의 1년을 집구석에 박혀 있었던 셈인데 그중 마지막 4개월 동안을 브런치 글들을 읽는 것으로 시간들을 보냈으니.


그렇게 읽기만 하다가 카카오톡 계정으로 브런치에 가입을 한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다. 읽기에 어느 정도 이골이 날 무렵, 또 끄적거려 보고 싶은 충동이 불쑥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등록을 하고 나니 조금 망설일 일이 생겼다. 이 곳은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동네가 아닌 걸 몰랐던 것이다.


[작가 신청]


작가는 무슨.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정 분야에 특별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글 쓰는 일로 밥을 먹고사는 것도 아닌데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기가 뻘쭘해졌다. 더군다나, 많은 구독자들을 거느린 짱짱한 글빨의 브런치 작가들을 보면서, 시대에 동떨어진 이야기들로 과연 남들에게 관심을 받기나 할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첫 번째 [작가 신청]은 낙방했다. 그럴 것이, 적당히 휘갈겨 쓰고 '어떻게 되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신청을 했으니 심사하시는 분도 어지간히 성의 없다고 느꼈을 만했다. 그런데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운전면허시험쯤으로 생각하고 대충 들이댔던 내가 조금 민망해졌다. 그래서 글 몇 개를 정성 들여 다시 썼다. 브런치 작가신청을 이렇게 하라는 가이드 같은 글들도 많았는데 나는 한 번 더 떨어지면 그만 둘 생각이었다. 



그렇게 가입 일주일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한 명이 읽더라도 이제 내 글들은 다른 분들에게 노출될 것이다. 그리고 브런치 독자들은 다른 포털사이트 독자들과 다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거쳐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중하게 글을 읽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다. 허투루 써선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 4개월 동안 내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곳이니, 나도 책임 있게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꺼내서 읽어 봐도 낮 뜨겁지 않은 글을 써야겠다는 각오도 생긴다. 모두가 '작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거움 때문이리라.


그러나 호칭은 여전히 불편하다.


"작가는 무슨... 그냥 취밉니다."



* 타이틀에 사용한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제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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