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을 빌린 정치적 거래

GOP와 복음주의의 위험한 동거

by 짐꾼의 목장

1. 전장의 포연 뒤에 숨은 개인의 손익계산서


중동의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인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이 거대한 국가적 격돌의 명분은 늘 '국가 안보'와 '정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독한 이권의 냄새가 진동한다. 현재 이 전쟁을 지탱하는 두 (악의) 축은 네타냐후와 트럼프다.


부패 혐의로 정치적 코너에 몰린 네타냐후에게 전쟁은 자신의 권력을 연장해 주는 가장 강력한 '방탄조끼'다. 임기가 끝나는 순간 법정으로 가야 하는 그는 전쟁의 지속을 갈구한다.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다. 지지율 하락과 엡스타인 파일 스캔들로 11월 중간선거에 패배할지 모른다는 정치적 위기에 몰린 그에게 중동의 혼란은 상대 진영의 무능을 부각할 최고의 소재이자, 자신의 강력한 리더십을 세일즈 할 수 있는 '쇼윈도'가 된다. 결국 전 세계가 고통받는 이 불필요한 전쟁은, 사실 두 정치인의 생존을 위한 '사적 전쟁'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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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광화문에 나부끼는 이스라엘 국기, 그 기이한 풍경


이 사적인 욕망의 전쟁이 종교적 색채를 입는 순간, 비극은 희극으로 변질된다. 일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이스라엘 국기를 함께 흔드는 보수 기독교인들을 마주한다. 태극기와 성조기까지는 이해하려 애써봐도, 왜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드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 전쟁을 기독교와 이슬람의 '영적 전쟁'으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미국의 복음주의자들과 동일한 시각을 공유한다. 왜 그들의 시각은 이토록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것일까? 이는 팩트(Fact)보다 교리(Dogma)가 앞서는 '세대주의 종말론'의 함정 때문이다. 이들에게 네타냐후의 야욕은 예수를 재림하게 할 '하나님의 도구'로 미화되고, 인간의 고통은 예언 성취를 위한 부수적 피해로 전락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선악 구도는 복잡한 국제 정치를 고민할 필요를 없애주는 '생각의 게으름'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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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덕적 다수'라는 괴물의 탄생과 성경이라는 알리바이


이러한 기괴한 결탁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다. 1970년대 말, 민권 운동과 낙태 합법화 등으로 위기감을 느낀 미국 보수 개신교 세력은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라는 기치를 내걸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당시 공화당 전략가들은 세속적인 정책만으로는 대중을 열광시키기 어렵지만, '종교적 가치'라는 옷을 입히면 집토끼들을 사지로도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이 거래에서 이스라엘은 가장 완벽한 매개체였다. 공화당에게는 중동 내 미국의 불침번이자 군수산업의 큰 고객이었고,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예수가 재림할 '무대'였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현재 네타냐후의 강경 노선은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를 지원하는 트럼프는 유대인을 해방시킨 이방 왕 '제2의 고레스'가 된다. 종말론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죽음 같은 현실의 비극은 지워져야 할 잡음이 될 뿐이다.



4. 위험한 메시아들의 공조와 잃어버린 '낮은 곳의 목소리'


트럼프가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을 때, 가장 환호한 것이 정작 유대인이 아니라 미국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트럼프의 비도덕성에는 눈을 감는다. 그가 성경을 거꾸로 들고 사진을 찍어도 상관없다. 자신들의 종교적 야욕을 실현해 줄 '힘 있는 대리인'이기만 하면 족하기 때문이다. 네타냐후는 이 생리를 누구보다 잘 이용하며, 전쟁을 통해 자신의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는 역설적 비극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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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예수는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셨다. 마태가 기록했듯,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신 3대 사역은 가르치고, 전파하고, 병을 고치는(Teaching, Preaching, Healing) '회복'에 있었다(마태복음 4:23). 하지만 지금의 보수 기독교와 공화당의 연대 속에는 '고통받는 인간'이 없다. 오직 정치적 승리와 교리적 만족만 남았다.


예수는 전신 갑주를 입고 칼을 휘두르는 정복자가 아니라, 다친 자를 싸매고 약자와 함께하며, 평화를 외치는 자였다. 지금 중동의 포화 속에서 이스라엘의 깃발을 흔들며 '성전'을 외치는 이들이 읽고 있는 성경은 과연 내가 읽은 그 성경과 같은 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을 위해 신을 소환하는 정치는 결국 괴물을 낳는다. 우리가 정작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우리 안의 오만함'이다.


-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