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의 ‘직감’을 사로잡는 방법
수많은 투자피칭 현장에서 반복해서 떠오른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창업자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슬라이드는 빈틈없이 정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투자자의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은 숫자와 그래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직감과 통찰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화려한 언변, 정교한 슬라이드, 치밀한 데이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은 언제나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찾아올까요?
마치 운명처럼, 혹은 오래 전부터 예정된 선택처럼. 그러나 그 모든 결정은 결국 한순간의 ‘직감’—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그러나 이상하게도 거부할 수 없는—그 찰라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페가수스 벤처스의 투자자 빌 라이허트(Bill Reichert)는 투자 피칭을 단순한 비즈니스 프리젠테이션이 아닌, 투자자의 머리(논리), 마음(감정), 본능(직관)을 동시에 움직이는 과정이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피칭의 순간은 숫자와 데이터의 싸움만이 아니라, 투자자로 하여금 “이 창업자와 함께하면 될 것 같다”라는 믿음을 갖게 만드는 영역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여년 간 수많은 창업자의 투자피칭을 돕고 함께하며 깨달았습니다.
“투자결정은 머리로만 계산될 수 없다. 머리와는 다른 메커니즘 - 가슴, 그리고 본능(직감)이 동시에 움직일 때 비로소 결심이 만들어진다.”
초기 단계일수록, 투자 결정은 논리적 증명이나 공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믿음과 확신의 작동 방식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종종 ‘완벽한 피치 덱’을 만드는 데 몰두하지만, 피칭은 슬라이드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제가 집필한 스타트업 피칭 스토리텔링 지침서 『피칭(2024)』에서도 강조했듯, 피칭은 듣는 이의 기억 속에 남는 인상입니다.
이 사실은 제가 <피칭살롱> 코치로 활동하며 더욱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투자결정을 내린 이후 투자자들에게 “어떤 팀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가”를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은 멋진 슬라이드가 아닌 무엇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창업자를 꼽습니다.
"멋진 슬라이드 덱은 피칭의 일부일 뿐, 투자자가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남긴 인상이다."
결국 피칭이란 슬라이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남긴 흔적입니다. 투자자의 직감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을 겨냥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창업자의 가능성이, 혹은 한 사람의 운명이 갈라지곤 합니다. 결국 피칭이란 슬라이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마주한 자리에서 남는 흔적입니다. 투자자의 직감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을 겨냥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창업자의 가능성이 드러나고, 투자자의 선택이 갈라집니다.
이 글은 그 미묘하면서도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을 해부하려는 작은 여정입니다. 창업자에게는 피칭 현장에서 반드시 점검해야 할 요소, 액셀러레이터에게는 투자 매력도를 보는 또 다른 기준, 그리고 코치에게는 창업자의 이야기를 시장의 언어로 바꾸는 실전 지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따라오면, ‘피칭의 작동 원리’—즉 투자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무엇이 실제로 투자 결정을 움직이는가—에 대해 훨씬 더 구체적인 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문제부터 말하지 마라" - 솔루션으로 시작하라
대부분의 창업자는 문제 설명부터 시작하지만, 이렇게 하면 처음 1분 동안 청중의 집중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대신, 해결책과 그것이 주는 혜택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X) "매년 83만 명이 폐암으로 사망합니다..."
(O) "우리는 폐암 환자 생존율을 30% 높이는 AI 진단 솔루션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한번 투자 피칭 클리닉에서 이 방법을 적용했을 때의 차이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문제부터 설명하던 팀은 첫 1분 동안 투자자들이 스마트폰을 보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솔루션으로 시작한 팀은 즉시 청중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2. "스토리텔링은 짧고, 간결하게" - 강력한 임팩트가 그려지는 선명한 스토리텔링
지나치게 긴 개인 서사나 감성적인 이야기들은 오히려 청중의 집중력을 분산시킵니다. 대신 “한 문장의 고객 스토리”, 또는 시장에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큰 임팩트를 상상할 수 있는 메시지”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모든 병원이 즉시 필요한 혈액형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저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짧고 강렬한 스토리텔링은 청중의 감정을 움직이면서도, 동시에 강렬한 인상을 담을 메시지로 선명하게 각인시킵니다.
3. “TAM, SAM, SOM ”- 지루하고 무의미하다
"우리 시장은 856억 달러 규모입니다"라는 식의 시장 규모 설명은 투자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대신, 실제 고객 세그먼트, 접근 전략, 전환율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뉴욕의 중소규모 병원 1,500개를 초기 타겟으로 정하고, 현지 진단파트너와 연계해 직접 접근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시장 규모보다, 첫 100명의 고객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던 팀이 피칭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창업자였습니다.
4. "템플릿을 버리고" - 상황 맞게 구조를 짜라
Sequoia나 YC의 표준 피치 덱 템플릿을 무작정 따르는 것은 금물입니다. 각 스타트업의 현실적인 상황과 플고자 도전하는 문제해결책, 그 것이 주는 가치에 맞게 피치덱은 재구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술 신뢰성이 핵심 리스크라면, 투자자가 가장 먼저 안심할 수 있도록 기술 검증 과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강렬한 팀의 실행의지의 증거를 전면에 배치해야 합니다.
경쟁자가 강력하다면, 단순히 “우리가 더 낫다”는 주장 대신 특정 산업군에 특화된 레퍼런스, 독점적 데이터 접근권, 혹은 현장에서 검증된 파트너십 등 경쟁자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구체적인 차별화 요소를 제시해야 합니다.
<피칭살롱>에서 만난 한 딥테크 스타트업은 흔히 쓰이는 정형화된 피치덱 템플릿을 과감히 버렸습니다. 대신 팀이 그동안 애써 수차례의 피벗을 거치며 쌓아온 기술 검증 과정을 피치의 중심 메시지로 두었고, 그 들이 짧은 기간에 발휘한 민첩한 피벗 역량으로 투자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결국 이 강렬한 인상이 시드 투자로 이끌어냈습니다.
5. '3C 프레임'으로 피칭의 골격만들기
빌 라이허트(Bill Reichert)는 3C 프레임의 다음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WOW' 프레임을 활용하면 강력한 메시지로 피칭의 기본 골격격은 만들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이 프레임워크는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투자자에게 명확한 이해, 강력한 이유,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빌 라이허트(Bill Reichert)는 효과적인 피치는 투자자의 다음의 세 가지 측면(몸과 마음)에서 동시에 호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봐도, 많은 한국 창업자들은 피칭에서 ‘뇌(Brain)’를 겨냥한 논리적 설명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장 규모, 성장 그래프, 기술 구조 같은 수치와 분석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인상’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가슴(Heart)’과 ‘본능(Gut)’을 건드리는 메시지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칭은 이 세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기술은 경쟁사보다 속도가 3배 빠릅니다”라는 메시지(투자자의 뇌가 이해하는)는 투자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이 기술로 수천 명의 환자가 더 빨리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투자자의 심장이 뛰는), 그리고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실패를 거듭하며도 끝내 해냈습니다”(투자자의 직감이 작동하는)라는 메시지가 더해질 때, 비로소 강렬한 WOW 순간이 탄생합니다. 뇌가 논리의 설득을 책임지고,심장이 감정의 연결을 만들어내며, 본능(직감)이 마지막 신뢰와 확신을 결정짓습니다.
뇌는 논리로 설득을, 심장은 감정적 연결을, 본능은 마지막 신뢰와 확신을 책임집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와도 닿아 있습니다.
로고스(Logos): 논리적 근거에 기반한 설득
에토스(Ethos): 화자의 신뢰성과 진정성
파토스(Pathos): 청중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자극
인상적인 피칭은 뇌·심장·본능, 그리고 로고스·에토스·파토스가 균형 있게 맞물릴 때 완성됩니다.
1. 핵심적 신뢰 정보는 맨 앞에 넣어라
"마지막에 한방" 전략은 이미 청중의 집중력을 잃은 후에 소용없습니다. 신뢰를 즉시 확보할 수 있는 요소—팀이 달성한 굵직한 성과, 저명한 파트너십, 폭발적인 성장 경험 등—는 반드시 초반에 제시해야 합니다.
피칭 메시지 예시: "저희 팀은 작년에 아카데미 시각효과 부문 수상한 엔지니어가 공동 창업자로 있습니다.", “저희는 이미 구글과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월간 사용자 5만 명을 확보했습니다.”
2. 고객에 집중하라
기술 구조보다 고객의 문제해결과 욕구 충족에 맞춘 설명이 더 효과적입니다. 이상적인 고객 프로필(ICP)을 명확히 하고 그들의 니즈-누구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세요. 무엇모다 지불가능한 고객 확보가 더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피칭 메시지 예시: “우리의 첫 고객은 미국 내 중소 물류업체입니다. 기존 솔루션으로는 하루 4시간이 걸리던 재고 관리가, 저희 솔루션으로 30분 안에 끝납니다.”
3. 숫자(지표)는 '딱 1~2개' 만 기억하게 만들어 하라
많은 숫자를 나열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기억되지 않습니다. 핵심 지표 1-2개를 선택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강조하세요.
피칭 메시지 예시: “우리가 강조할 두 가지 숫자만 기억해 주세요. 고객 전환율 42%, 재구매율 87%. 이것이 곧 우리의 성장 증거입니다.(반복 강조)”
4. "우리는 첫 번째다", "이건 유니크하다"는 말은 금물
검증 없이 과장된 표현은 바로 신뢰 상실로 이어집니다. 대신 차별화된 요소와 실질적 가치를 수치나 사례로 증명하세요.
피칭 메시지 예시: “우리는 ‘세계 최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존 경쟁사 대비 처리 속도를 3배 높이고,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5.솔직함(integrity)이 최고의 무기다
투자자는 결국 사람을 봅니다. 불완전함을 숨기기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보여줄 때 오히려 더 강한 신뢰가 쌓입니다. <취약함을 고백하는 CEO, 진정한 리더다>이 글에서 언급한 최근 피칭살롱에 함께한 한 스타트업이 어떻게 자신의 취약함을 고백하고, 진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는지—그 극적인 변화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피칭 메시지 예시: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수익화 모델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고객 1,200명의 데이터를 확보했고, 올해 안에 1만명의 데이터 확보에 가장 현실적인 모델 검증 에 시간과 비용에 고충을 격고있는게 사실입니다.(도움이 필요합니다)”
효과적인 피치는 단순히 정보 전달을 넘어 감정적 연결과 신뢰를 형성하는 예술입니다. 청중의 뇌, 심장, 본능에 동시에 호소할 때 진정한 "WOW" 효과가 생깁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성공적인 창업자들은 피치가 끝난 후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 인상을 남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슬라이드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청중에게 비전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함께읽은 거리
투자자의 마음과 이성, 그리고 직감을 사로잡는 10가지 피칭 전략
https://eopla.net/magazines/31171
70억원 밸류에이션의 확신, <피칭살롱>에서 찾았다
https://eopla.net/magazines/32301
<피칭살롱>에서는,
논리(로고스)를 넘어 감정(파토스)과 신뢰(에토스)로 움직이는 “피칭의 골격”을 만들게 됩니다.
“슬라이드”가 아닌 “사람”으로 기억에 남는 피칭 스토리텔링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당신의 가능성을 시장과 투자자가 반응하는 언어'로 전환”해낼 수 있습니다.
� <피칭살롱>문의 potentialeye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