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버티는 길 위에서

2025년 12월 08일 ~ 12월 14일 주간기록

by 기록하는노동자

출근은 시작됐지만 일상은 아직 제자리인 것 같았다.


대외활동회의가 있으면 연차를 냈고
조사가 있으면 또 연차를 냈다.
회사로 돌아왔지만 회사 밖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많았다.


이번 한 주는 무언가를 시작했다기보다는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넘기고 있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12월 8일, 연차로 시작된 하루

연차를 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구로구협의회 4차 정기회의가 있다.
출근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런 날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민주평통 활동은 정치활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동조합 활동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그래도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고, 노동조합의 연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추천을 받아 자문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참석이 법적으로 꼭 필요한 자리는 아니지만 빠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맡은 역할을 하나라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민주평통 자문회의 기자단에도 선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다 보니
2026년은 지금보다 훨씬 분주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12월 9일,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연맹으로 출근했다.


매일 오가던 곳인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정도 들르는 공간이 됐다.
익숙한 풍경인데도 몸이 먼저 반응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주 요청한 표창장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노동조합 관련 논의들을 이어갔다.
다음 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조직 편성 이야기도 나눴는데
화학연맹 조직실장님이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셔서 머릿속이 조금 정리됐다.


점심을 먹고 부천 조합 사무실로 돌아왔다.
대의원대회 보고 자료를 정리하고 있던 오후 3시쯤
익숙한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남부지검이라고 했다.


이미 불기소됐던 정보통신망법 사건.
회사가 항고했고 올해 2월 재기수사명령이 내려진 뒤
몇 차례 연락이 오갔던 바로 그 건이다.


피의자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말이 나왔다.
날짜는 11일 목요일.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잠시 아무 일도 못 했다.
머리가 멍해진 채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2년 전부터 이 사건을 맡아준 이성영 변호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일정을 조정해서 동행해 주시겠다고 했다.


불기소였던 사건인데도 복직을 한 지금까지
형사 사건과 고등법원 사건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1일도 연차를 쓰겠다고 회사에 알렸다.
왜 나는 이런 일들 앞에서 늘 연차부터 떠올려야 하는지
그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12월 10일, 준비되지 않은 채로

내일은 검찰조사다.


그런데 당장 더 급한 건 다음 주 대의원대회 자료였다.
어제 정리해 둔 걸 다시 보면서 빠르게 손을 봤다.


인쇄물을 뽑고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 와중에 화학연맹 서울지역본부 후보자 공고도 만들고 문자 발송까지 마쳤다.
일은 정말 몰릴 때 몰린다.


집에 돌아와서야
내일 조사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 변호사님이 보내주셨던 조서를
한 번 읽고 불을 껐다.

12월 11일, 숨이 막히던 오후

아침 9시, 변호사님을 만났다.


부장검사가 맡을 사건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왜 이렇게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검찰에 항고장을 낸 곳이 유명한 로펌이라서 그런 걸까?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다.


9시 30분부터 조사가 시작됐다.
점심시간 1시간 반을 제외하고
오후 6시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회사 측 주장을 반박하고 당시 상황을 하나씩 설명했다.
영화에서 보던 조사실은 아니었다.
계장이 조서를 쓰고 문틈 사이로 검사가 계속 듣고 있었다.


오후 3시쯤부터 검사의 질문이 시작됐다.

그때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몇 번 겪어본 상황이라 천천히 숨을 고르며 버텼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속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 일이 왜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계속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조사가 끝나갈 무렵 참 서럽고 슬펐다.

아이디를 한 번 잘못 눌렀던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인가 싶었고
'주말에 그냥 쉬면 될 것을 왜 메일을 확인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돌아왔다.


조사를 마치고 나오니 전화와 문자가 잔뜩 와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문의와

간부님들의 연락들.


단톡방에 짧게 공지 하나를 올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와이프가 아무 말 없이 등을 두드려줬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했다.

12월 12일~13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또 연차를 냈다.

그냥 쉬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1박 2일 동안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너무 힘들게만 살면

이런 시간조차 버틸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12월 14일, 국회에 갔다

국회에 갔다.

상을 받았다.
사람이 많았다.


당대표 1급 포상이라고 했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이번 주가 지나갔다.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19-1.jpg 검찰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이성영 변호사님이 글 쓰는 데 사용하라며 촬영해 주셨다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19-2.jpg 편한 휴식을 제공해 준 친한 형님의 안식처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19-3.jpg 12월 14일 국회의사당 전경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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