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았다

2025년 12월 15일 ~ 12월 21일 주간기록

by 기록하는노동자

투쟁의 시간은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 끝났다고 하기엔 정리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다.
다만 분명한 건 이제는 버티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번 한 주는 싸우기보다는 정리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대의원들과 마주 앉아 미래를 이야기했고
회사로 돌아가 후배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확인했다.


시간은 그냥 흐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간은 내 안에 경험으로 남아 조용히 쌓여 있었다.


12월 15~16일, 결의를 말로 옮기는 자리

대의원대회와 간부 워크숍을 을왕리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했다.


15일의 대의원대회는 2025년의 우리 노동조합을 돌아보고
2026년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였다.

먼저 감사님께 2025년 하반기 회계감사를 받았다.
아슬아슬하게 운영되고 있는 재정 상태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제 복직을 했으니 조금씩 회복되겠지만 아직은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다.


회계감사 이후 대의원대회를 시작했다.
지난주 버티는 와중에도 틈틈이 작성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대의원들에게 보고를 했다.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승인받고

손질이 필요한 규약에 대해서는 재심의를 받았다.

꽤 긴 시간을 회의로 보내고 잠시 휴식을 가진 뒤
자유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질문은 단순해졌다.

조합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음 날까지 이어진 고민의 결론은 조합의 ‘정상화’였다.

떠나간 조합원을 다시 돌아오게 하고 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건전한 노사관계의 기반을 다지는 일.


지난 3년이 투쟁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3년을 준비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1년이 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한국노총 위원장상, 화학연맹 위원장상,
화학연맹 서울지역본부 의장상을 부위원장 두 분과 사무국장님께 전달했다.

그간의 노고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보상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마음이 전해졌기를 바랐다.

12월 16일, 다시 같은 테이블에 앉다

워크숍을 마치고 부랴부랴 영업팀 회식에 참석했다.

부서 회식에 참여한 건 2년 5개월 만인 것 같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촐하게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후배들과 가볍게 2차로 맥주를 마셨다.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이 반반이었다.

새로운 후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유난히 빠르게 흘렀다.


후배들 대리운전을 챙기고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었다.

회사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그제야 조금 났다.

12월 17일, 쌓인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전에 화학연맹 서울지역본부 의장선거 당선자 공고를 준비해 배포했다.

이로써 선관위원 업무도 마무리됐다.

상급단체 선관위원 활동을 하며 배운 것이 많았다.
절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오후에는 서울지역본부 월례회의 겸 송년회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쌍용레미콘 위원장님, 동양 지부장님,
그리고 화학연맹 가입 이후
딱 한 번 뵀던 천마레미콘 위원장님까지.


레미콘 위원장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위원장님들과도 많은 대화를 했다.

그간 항상 나를 챙겨주신 임기를 마치신 위원장님께는
그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3년 전 우리처럼 이제 막 시작해 좌충우돌 중인
신설 노동조합의 위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이제 조금은 경험이 쌓인 노동조합이 되었구나.


그간 시간은 그냥 흘러간 줄만 알았다.
고통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시간은 내 안에 경험으로 쌓여
지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야 그걸 알아차리다니 참 우둔하다.

12월 18일, 흔들리지 않게 붙잡는 말

점심시간에 조합원들을 만났다.

인사이동과 조직개편을 둘러싼 여러 루머들이 오가고 있었다.

단순한 루머임을 확인해 주었다.
가급적 출퇴근 거리가 가까워지도록 회사 방침이 정해졌다는 점도 함께 전달했다.


위원장으로서 동지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확인된 사실은 명확히 말했다.

혹시라도 본인이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껴지면 지체 없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오후에는 미뤄두었던 여러 민원에 대해

현재 운영 중인 소통 채널을 통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오해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

처음부터 이랬다면 참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기초를 다지기 시작하니
느리지만 풀려나가는 느낌이 든다.

12월 19일, 말뚝을 박는 일

미뤄두었던 숙제를 하듯 회사 규정들을 하나씩 다시 살펴보고 있다.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선할 지점을 찾기 위해서다.


들어온 민원은 크게 세 가지.
연장근로수당, 원격근무지 발령자의 숙소 지원, 임금피크제 문제.


옳고 그름으로만 접근하기보다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고
대화의 여지가 있는지 점검했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지만
그래도 협상의 실마리가 있는지
천천히 탐색하고 있다.


노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관계다.
그리고 그 운동장은 힘이 센 쪽에 유리하다.

그저 아량에만 기대고 있을 수는 없다.
더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말뚝을 박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12월 20일, 다시 일상으로 스며드는 감각

날이 추워지니 몸도 함께 움츠러든다.

휴일에 집에만 있기는 싫어 가족과 새로 생긴 식당으로
저녁 외식을 나갔다.


가성비 좋은 메뉴에 가족 모두 만족했다.

음식을 먹으며 후배들과도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 가족 생각이 나고
가족과 맛있는 걸 먹으면 후배들 생각이 난다.

다시 출근을 하니 이런 생각들이 생기는 걸까?

12월 21일, 보내지 못한 메시지

나는 친형과 친하지 않다.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건 1년에 한 번도 많다.
얼굴을 보고 나누는 대화의 끝은 대부분 좋지 않다.


그런데도 형 생일 알람은 늘 맞춰둔다.

올해도 메시지를 보내지는 못했다.

내년에는 보낼 수 있을까?
아마 보내지 못할 것 같다.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20.jpg 뜨겁고 치열했던 대의원대회 및 간부워크숍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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