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9일 ~ 2026년 1월 4일 주간기록
2025년은 끝났지만 끝났다는 감각은 쉽게 오지 않았다.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조직의 문제도 개인의 자리도
연말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정리되지 않았다.
이번 한 주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자
다시 출근해야 하는 자리로 이동하는 시간이었다.
정리와 준비, 기대와 쓰라림이 같은 날 같은 마음 안에 겹쳐 있었다.
2025년을 떠나보내면서도 나는 여전히 노동조합의 일정을 붙잡고 있었고
2026년을 맞이하면서는 새로운 공장, 새로운 역할 앞에 서 있었다.
이 주간은 그렇게 끝과 시작이 동시에 존재했던 기록이다.
12월 29일, 끝나지 않은 재판 이어지는 연대
오전에 법무법인 오월에 방문했다.
2025년 1월에 시작된 행정법원 판결이
2026년을 앞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안타깝게 느껴졌다.
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 두 건에 대해
회사가 항소한 사건.
노동위원회에서는 불인정되었지만 행정법원에서 한 건이 인정으로 바뀌면서
회사와 노동조합 모두가 항소한 사건.
이 두 재판이 지금도 고등법원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다.
서면 제출에 필요한 자료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준비하기 위해 변호사님과 미팅을 가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같지만 이 싸움이 기록으로 남고 판결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늘도 하나씩 정리해 나간다.
미팅을 마치고 강호민 변호사님과 점심을 먹으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변호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언제나 묘하게 힘이 충전된다.
노동자가 지치고 힘들 때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로다.
강호민 변호사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점심 이후에는 2025년 4분기 노사협의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마포에서 여의도로 이동했다.
2시 회의 전 근로자위원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번 회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이 노조 간부이기에 회의 결과에 대한 기대보다는 예측에 가까운 대화였다.
노사협의회가 법적으로 큰 강제력을 가지지 못하다 보니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더 다양한 협의 방식 조금 더 실질적인 구조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적으로도 노동자들에게 조금 더 힘이 실릴 수 있도록
의견을 전달해야 할 곳들이 떠올랐다.
2시에는 영업용 차량을 인계받기 위해 담당 부서 직원을 만났다.
우리 회사는 영업사원에게 니로 하이브리드를 지급한다.
퇴사한 영업사원의 차량을 인계받았는데
안전에 대한 옵션은 조금 늘어났지만
아쉽게도 내비게이션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기준으로 50만 원 남짓한 추가 옵션일 텐데...
전방 센서도 빠져 있었다.
그래도 업무용 차량은 니로로 조합 업무는 카니발로 구분해서 다니면 될 일이다.
오후 3시에는 한국노총 위원장 3선에 도전하는 김동명 후보의 선거본부 발대식에 참석했다.
그동안 버티고 기록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준 김동명 위원장을 위해 연대로 보답하고 싶었다.
정말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였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와이프와 아들은 여행을 떠났다.
혼자 남은 집이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12월 30일,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려 했던 날
오늘은 마음의 정리를 하고 그동안 제대로 세워보지 못했던
내년의 계획을 세워보고자 스스로에게 약속한 날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일부러 조용한 숙소도 잡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인사이동 발령과 관련된 문의와 상담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주간 내내 그리고 퇴근 이후까지 전화는 계속 울렸다.
모든 통화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오후 8시였다.
전화 통화를 하며 숙소로 이동했고 전화 통화를 하며 체크인을 했다.
마지막 통화는 회사의 관계자였다.
인사이동과 관련해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과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후에는 우리 조합원들의 입장을
조금 더 반영해 달라고 말했다.
아직 대화가 충분하지 않기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2026년에 더 채워가야 한다.
숙소 주변 알아본 맛집들은 그냥 흘려보내고
편의점에서 참깨라면과 하나 남은 김밥을 사서 방에 들어왔다.
허겁지겁 저녁을 해결하고 맥주 한 캔을 마시니 몸이 노곤해졌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니 10시였다.
부랴부랴 노트를 펼쳤다.
‘2026년 12월 31일 이뤘다고 쓰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열한 가지가 나왔다.
노동조합의 일도 있었고 개인적인 소망도,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일들도 있었다.
내년 이맘때에는 웃으면서 모두 이뤘다고 쓰고 싶다.
12월 31일, 아프게 끝난 한 해
새벽에 조식을 먹고 출근을 서둘렀다.
나를 위한 시간을 위해 잡았던 숙소는 2025년 마지막 날 나를 다시 바쁘게 만들었다.
점심에는 조합원과 식사를 하며 서로 덕담을 나눴다.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에 조합비 기부금 영수증 안내 문자를 준비하고
12월 활동보고를 작성하던 중 인사이동 발표가 났다.
충격이었다.
어제 회사 관계자와 나눴던 통화와는 별개로 팀장급 발령 내용이 너무도 아팠다.
조합을 탈퇴했거나 자격정지 상태로 1년 이상 지난 사람들은 사업장의 팀장이 되었다.
그보다 우수한 실적을 냈고 연차도 높은 조합 간부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공장장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원격지 발령을 받은 조합 간부가 이동하자
공장장이 겸직하던 부서의 팀장 자리가 생겼고 그 자리에 그 동료가 앉았다.
오해하지 않으려 해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해당 조합 간부들과 통화하며 다독였지만 내 마음이 더 쓰렸다.
노동조합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현실이
이 날따라 유난히 아프게 느껴졌다.
이렇게 아프게 2025년이 끝났다.
2026년은 부디 덜 아프기를 덜 쓰리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나는 부천공장에서 송도공장으로 발령이 났다.
영업도 노동조합도 모두 잘 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시 다졌다.
2026년 1월 1일, 조용히 시작된 새해
새해 첫날 일출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와이프와 아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다음 날은 새로 발령받은 공장으로 첫 출근을 해야 했다.
월요일에 변호사님과 협의한 자료를 종일 정리했다.
자료를 전달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새해 첫날은 이렇게 방 안에서 조용히 저물어갔다.
1월 2일, 송도로 향한 첫 출근
새벽 4시 5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송도공장은 아침 7시부터 근무가 시작되기에 늦어도 5시 5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짐을 챙겨 월요일에 인계받은 니로에 시동을 걸고 공장으로 향했다.
6시 30분 송도공장 앞에 도착했다.
인사를 나누고 아침을 먹은 뒤 업무를 시작했다.
지금은 간부직을 내려놓았지만 처음을 함께했던 전 수석부위원장과 함께 권역을 돌았다.
부천과 강서공장에서만 영업 업무를 해왔기에 송도 권역은 새로웠다.
송도 지역만의 특성도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다른 지역은 8시부터 17시까지만 출하가 가능하지만
송도는 7시부터 18시까지 출하가 가능하다.
대신 지입 계약된 믹서트럭만 사용할 수 있고 용차는 쓸 수 없다.
현장을 이해하며 둘러보다 보니 갑자기 설레는 마음이 올라왔다.
새로운 시작이라 그런 걸까.
한편으로는 균형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는 않을지 조심스러움도 함께 따라왔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영업팀 후배들과 저녁을 먹었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송도에서의 시간이 조금은 기대된다.
1월 3일, 아들과의 대화가 남긴 숙제
화성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와이프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에 쉬고 아들과 둘이서 다녀왔다.
차로 이동하며 아들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좀 더 많은 교감을 해야겠다.
이것도 2026년에 꼭 해내야 할 일이다.
1월 4일, 이렇게 한 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와이프의 컨디션을 올리기 위해 하루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와이프 대신 아들의 학원 보강을 데려다주고
미뤄두었던 화장실 청소와 분리수거를 마쳤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분주한 주말이 앞으로의 2026년을 미리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