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기 시작한 길 위에서

2025년 12월 01일 ~ 12월 07일 주간기록

by 기록하는노동자

12월이 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2년 2개월 22일이라는 긴 어둠을 건너 다시 ‘출근’이라는 일상의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설렘보다 조심스러움이 더 컸다.
기쁨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있었다.
노동조합의 정상화, 노사관계의 회복,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역할들.


바로 한 걸음 앞의 길이 선명해진 듯하지만
동시에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쌓아야 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번 한 주는 그 길의 첫머리를 조심스럽게 다시 딛는 시간이었다.


12월 1일, 다시 시작하는 첫발

집에서 조합 사무실로 가는 길과
내가 근무했던 그리고 복직할 공장으로 가는 길은 거의 같다.
걸어서 7분 남짓.
그렇게 2년 넘게 멈춰 있던 발걸음을 다시 공장으로 내디뎠다.


조합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공장장님과 첫 면담을 했다.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그 따뜻함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오늘 나는
2년 2개월 22일의 시간을 버텨내고 첫 출근을 했다.
12월 한 달은 근로시간면제로 조합 업무만 보기로 했지만
그래도 내 명패는 다시 이 공장의 ‘영업팀’ 소속으로 돌아왔다.


점심까지 함께 먹고
오후엔 조합 사무실로 돌아와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3년 전 우리는 갈등 속에 있었다.
단체협약도 사무실도 없었다.
2년 전에는 위원장인 내가 해고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단체협약도 있고
사무실도 있고
위원장도 복직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2026년을 준비하기 위한 12월.
우리는 노동존중이 우선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12월 2일, 출근 다음 날, 나는 연차를 냈다

다시 출근한 마음을 정리할 틈도 없이 연차휴가를 냈다.
헌법기관인 민주평통 전체회의 참석을 위해서다.


복직이 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참석하는 이 행사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 생각이 잠시 마음을 스친다.


민주평통 활동은 개인적 자문활동이지만
여기서의 인적 네트워크는 앞으로 노동조합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업무도 노조도 개인 활동도
이제는 어느 것 하나 게으르게 할 수 없다.


수천 명의 자문위원이 한 자리에 모인 회의를 보며
향후 우리 노동조합의 총회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언젠가 우리도 저렇게 모일 수 있을까.
그 기억들을 잘 저장해두고 싶었다.

12월 3일, 선관위 회의와 다시 시작된 개별소통

오늘은 화학연맹 서울지역본부 의장선거 선관위 2차 회의가 있었다.
대의원 명부를 확정하고, 선거공고를 세팅하고, 문자 예약까지 마쳤다.


단위노조 선거와 달리
지역본부 선거는 절차가 더 까다롭고 판단할 요소도 많다.
경험 많은 선배 선관위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배움이 쌓여간다.


저녁 무렵 조합원들의 식사 요청이 있었고
즐겁게 함께 식사했다.
복직 이후 처음 느끼는 자연스러운 편안함.
앞으로는 이렇게 작은 개별소통을 꾸준히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2월 4일, 처음 쓰는 공적조서

지난 3년 동안
우리 노동조합은 단 한 번도 상급단체 표창을 요청할 수 없었다.
비상시국, 전시체제 같은 시간 속에서
표창은 사치였다.


하지만 이제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정말 고생한 간부들에게 최소한의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다.


공들여 공적조서를 작성하고
수상자를 감사님과 상의해 결정해 연맹으로 보냈다.


앞으로는
더 많은 표창장을 우리 조합원들에게 가져오고 싶다.
정말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12월 5일, 감사 인사를 전하는 하루

점심에는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방문했다.
복직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었음을 증명할 서류를 전달하고
그동안 있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차분히 나눴다.


담당 감독관님들 모두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정말 마음 깊이 감사했다.
우리 노동조합의 설립증을 받아주었던 감독관님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우여곡절 많았던 지난 시간을 함께 견뎌준 분들
노동조합이 흔들릴 때마다 묵묵히 힘이 되어준 분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사람들이 될 것 같다.


저녁에는 그간 노동조합을 도와주었던 기자님과 식사를 했다.
현실적인 고민들을 깊이 공감해 주었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노사관계 재정립의 과정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잘 보고 있을게요.”
그 말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오늘 하루는
‘감사’라는 감정이 얼마나 묵직하게 마음을 채울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배우는 시간이었다.

12월 6일, 대학 동기들과 잠시 떠난 시간여행

매년 이맘때 모이는 대학 동기들과의 송년회.
스무 살 때 밤새 술 마시고
MT 가고
기숙사에서 고스톱을 치며 시간을 보낸 친구들.


지금은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시절의 시간은
만나는 순간 그대로 되살아난다.


잠시나마 타임슬립한 것처럼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그 시간이 참 소중했다.

12월 7일, 부모님께 책을 드린 날

부모님께 책을 드렸다.
표지를 힐끗 보시곤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셨다.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을 드렸다.
내가 지난 2년 3개월을 어떻게 기록해 왔는지
그 기록이 어떻게 한 권의 책이 되었는지.


설명을 듣고 나서야
두 분 모두 많이 놀라셨다.


“복직했다고? 이제 상황 끝난 거지?”
아버지의 그 말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모든 일을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던 부모님,
나는 잘 지내는 줄만 알고 계셨다는 부모님.


늦은 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식 속 썩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라고 하셨다.
그 말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괜찮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
내 눈에도 천천히 눈물이 고여왔다.


일요일 심야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많은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밤이었다.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18-1.jpg 복직축하 꽃다발도 준비해 준 감사한 부위원장님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18-2.jpg 2025년 12월 2일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 모습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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