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앞둔 시간, 다시 걸음을 준비하며

2025년 11월 24일 ~ 11월 30일 주간기록

by 기록하는노동자

11월의 끝자락, 긴 시간 돌아가던 바퀴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는 ‘출근’이 내게는 너무나 먼 길이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현장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온다.


복직을 앞둔 마음은 설렘과 긴장, 그리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묵직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돌아가기 위해 버텼고, 버티기 위해 기록했다.
그리고 이제 그 기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록이 시작되려 한다.


11월 24일, 산업안전보건의 벽을 마주하다

새벽 KTX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교육을 듣기 위한 2박 3일 일정이었다.
경주역에서 잘못 내려 허둥지둥 다시 기차에 올라타는 해프닝도 있었다.
연수원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곧바로 교육장으로 들어갔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은 예상보다 방대했고
들으면 들을수록 현실과 법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서류만 맞추면 되는 게 아닌데
현장의 모든 것이 ‘서류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실이 더 뼈아팠다.


나름 경제학을 전공했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최소비용 최대효과.”
하지만 산업안전보건에서 이 논리는
결국 사고 위험 증가와 사회 전체의 비용 부담이라는
‘사회적 순손실’로 이어질 뿐이다.


교육이 끝나고 숙소에서 혼자 정리해보니
지금 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우리 회사에 맞는 실질적인 안전문화는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월 25일, 마음 건강 역시 산업안전의 한 축

힐링프로그램을 배우며 산업안전보건이 ‘외적 안전’만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다.
마음의 병은 외적 위험 못지않게 큰 상처를 남긴다.


레미콘업은 사방에서 갑질을 당하는 구조다.
거래처, 운송노조, 원자재업체… 어느 방향에서도 편하지 않다.
이런 환경 속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신과 상담을 권하기 어려운 분위기지만
직업트라우마센터만큼은 “한 번 가보라”고 말해줄 수 있다.
앞으로 꾸준히 홍보할 생각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느끼는 사실.
산업안전보건은 임금보다 앞서야 하는 ‘노동존중의 첫걸음’이다.
서두르지 않고, 느루하게, 그러나 꾸준히 추진해 갈 생각이다.

11월 26일, 안전문화는 강요가 아니라 문화로 만든다

마지막 수업에서 들은 결론은 명확했다.
산업안전보건의 핵심은 ‘문화’다.


안전모, 안전화 같은 기본조차 불편함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 현실.
이걸 밀어붙인다고 바뀌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먼저 문화를 쌓고
그 문화를 토대로 작은 변화부터 요구해야 한다.
대결이 아니라 신뢰와 대화를 기반으로.


오후에는 광명역에서 화학연맹 서울지역본부 의장선거 선관위 회의에 참석했다.
내 일정 때문에 선관위원들이 역까지 와주었다.
고마운 하루였다.


교육을 마치고 나는 내년 사업계획에 ‘산업안전보건 분야 강화’를 정식으로 넣었다.

11월 27일, 따뜻한 축하와 조용한 각오

오랜만에 사무실 문을 열어 청소를 했다.
11월도 이제 끝이다.


이번 달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책이 출간되었고, 복직 합의를 했고, 회사와의 대화도 시작했다.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소송들도 이어지고 있다.


밀린 업무를 정리하고
연대해준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돌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퇴근 무렵

그동안 아껴왔던 복직 공지를 조합원들께 보냈다.
축하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치쳐있던 열정에 에너지가 채워진다.
‘동지들이 있기에 내가 있다.’
이 단순한 진실을 다시 배웠다.


11월 28일, 활동보고와 출근 준비

11월 활동보고 요약을 만드는 데 하루를 몽땅 써버렸다.
미리 준비해 둔다고 해도 막상 정리하려 들면 늘 시간이 모자란다.
구독률은 절반 정도지만 그래도 결코 건너뛸 수는 없다.
노동조합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알리는 최소한의 소통
그 책임감이 나를 책상 앞에 붙들어두었다.


활동보고 발송을 마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곧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만큼
원래 근무지인 공장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다음 주 월요일, 출근 후 면담 일정을 잡았다.

그 통화를 마치는 순간
정말로 ‘돌아간다’는 실감이 가슴 깊숙이 내려앉았다.


이제
‘출근 대신 기록합니다’라는 말은 서서히 뒤로 물러나고,
‘출근해서 기록합니다’라는 새로운 기록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길었던 굴곡을 지나 다시 일터로 향하는 이 감정은
설렘과 긴장, 그리고 묵직한 책임감이 뒤섞여 있다.


저녁에는 대학 선후배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20대의 뜨거웠던 시간을 함께 지나온 동지들.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지만 다시 모이면 금세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지난 2년 2개월을 잘 버텼다고
너무 잘해왔다고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 따뜻한 위로가 오랫동안 마음에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11월 29일, 작은 정리 큰 마음

출근을 준비하며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했다.

머리 하나 잘랐을 뿐인데 마음가짐이 새로워진다.

11월 30일, 새 기록의 앞에서

드디어 내일이다.

‘출근 대신 기록합니다 을의 일지’가
‘출근 해서 기록합니다 을의 일지’로 바뀌는 날.


긴 시간 돌아왔고, 이제 다시 설 자리로 돌아간다.


동지들 곁에 서기 위한 첫걸음을 앞두고
조용히 감사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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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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