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복직한 뒤 제대로 마주한 현실

2026년 01월 19일 ~ 01월 25일 주간기록

by 기록하는노동자

현장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발열조끼로 몸은 버텼지만 손끝은 얼어붙었고 전화는 배차가 늦어질수록 더 자주 울렸다.

2만 7천 보를 걸으며 깨달은 건 단순했다.

내가 떠나 있었던 시간 동안에도 현장은 한 번도 멈춰준 적이 없었다는 것.


그 현장 위로 또 다른 길이 겹쳐졌다.
개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 법원으로 향하는 발걸음, 이동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

어떤 날은 박수를 쳤고 어떤 날은 속이 쓰렸다.

노사 상생을 말하면서도 소송은 끝나지 않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법원 앞에서는 수직절벽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한 주는 더 선명했다.
현장에 서 보니 후배의 고충이 몸으로 이해됐고 다시 초심이 떠올랐다.

이 피나는 노력에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 시작했던 것.

그리고 그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또 선택을 연습해야 한다.

영업사원으로서의 책임과 위원장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1월 19일, 현장에 서서 다시 확인한 이유

레미콘 회사에 근무하면 대개 1~2월과 7~8월에 휴가를 간다.
어떤 회사는 여름에 별도의 휴가 5일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 회사는 연차 5일 사용을 권장하는 방식이다.


오늘은 노동조합의 최초 멤버였고 1기 집행부에서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던 후배가 1주일간의 휴가를 쓰는 첫날이다. 그 후배가 맡았던 A건설사 현장은 공장에서 약 20분 정도 걸리는 아파트 현장이다.


두 개 단지에서 동시에 타설이 진행되고 담당자도 많고 현장에서 요구하는 사항도 많다.
한마디로 꽤나 복잡한 현장이다.


나는 보통 업무 시작 30분 전쯤 회사에 도착하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오늘도 6시 20분쯤 사무실에 도착했다.

현장과 다시 연락해 타설 여부와 타설 시간을 재확인하고 당일 타설 물량의 규격과 현장 차량 진입에 관한 사항을 다시 점검했다.


6시 50분쯤 현장에 도착해 송장을 보관할 통을 양쪽 타설 현장에 배치하고 출하실에 차량 출하를 지시했다.
정신없이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이미 7시 30분이 넘었고 손목에 찬 워치는 8천 보를 넘어 있었다.

송도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입은 발열조끼 덕분에 몸은 그럭저럭 따뜻했지만 손끝의 감각은 20대 초반 군 시절에나 느껴봤던 내 것이 아닌 감각이었다. 잠시 차 안에서 몸을 녹이고 다시 현장을 향해 걸었다.


중간중간 변수가 생겼고 그때마다 무전을 치고 출하실과 시험실에 연락을 돌렸다.
정신없이 대응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후배들과 잠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현장으로 돌아오니 한쪽 현장의 펌프카가 타설 위치를 옮긴다는 연락이 왔다.
송장통을 다시 옮기고 차량 유도 동선을 다시 전파했다.


점점 매서워지는 바람 속에서 몸은 굳어갔고 배차가 조금만 지연돼도 전화는 수시로 울려댔다.
차가운 날씨에 축축한 레미콘을 주물러가며 시험 업무와 몰드를 제작하는 시험실 직원의 표정도 점점 지쳐갔다.

그래, 원래 현장은 이런 곳이었다.

2010년 막 입사해 처음 현장을 나갔을 때도 2022년 노동조합을 만들기 직전에도 그리고 2026년 부당해고로부터 복직해 다시 현장에 섰을 때도 현장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문득 작년에 힘겨워하던 수석부위원장이었던 후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현장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하나하나 다 대응하고 나면

나라도 조합 일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고난도의 현장을 맡고 있으면서 조합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다는 건 더 어려운 선택이다.
내 이름으로 물량이 나가고 현장의 요구를 맞출수록 더 많은 물량을 요청받게 된다.

그 물량을 다른 동료에게 맡기고 조합 업무를 본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후배의 고충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나에게도 영업사원으로서 책임져야 할 현장이 생길 것이다. 중요한 타설이 있는 날에는 내가 직접 현장에 서야 한다. 비수기이자 건설 경기가 침체된 시기에는 오히려 현장의 요구 수준은 더 높아진다.

갑의 지시에, 을도 아닌 병, 정쯤 되는 레미콘 영업사원은 결국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노동조합의 대표자다.
조합 업무 역시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언젠가는 조합 업무와 영업 업무가 겹칠 것이고 그때는 내 일을 팀의 다른 후배가 나눠 맡아야 할 순간도 올 것이다.
그 중심을 조금씩 맞춰나가야 한다.

영업사원으로서의 욕심은 줄이되 일은 되게 만들어야 한다.

위원장으로서 조율할 수 있는 일정은 조율해야 한다.

선택의 순간은 수시로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더 성장해야 한다.
아직은 많이 모자라다.


어찌어찌 현장을 마감하고 하루를 정리했다.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하루에 2만 7천 보를 걸었다. 간만의 현장 관리에 몸이 삐걱거린다.

후배들과 저녁에 감자탕에 소주 한 잔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해고되기 전이나 2년 3개월이 지난 지금이나 영업사원의 하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피나는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 노동조합을 시작했었다는 사실.

현장이 아니면 절대 체감할 수 없는 현실과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한 하루였다.

1월 20일, 박수 칠 수 있는 날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 개표가 있는 날이다.


점심에는 화학연맹 서울지역본부 의장 선거 선거관리위원회의 늦은 해단식이 있었다.
매일유업 지부장님, 전국아워홈 노동조합 위원장님, 그리고 나.

셋이 모여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늘 그렇듯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는지 의견을 나누다 자리가 끝났다.


오후에는 김동명 위원장 후보와 류기섭 사무총장 후보의 선거 개표와 당선증 전달식이 있었다.
투표율 86.8%, 찬성률 93.78%.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지원했던 한 명의 운동원으로서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이어진 해단식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는 두 분의 건승을 기원한다.

1월 21일, 법원이라는 수직절벽

오전에는 근로시간면제를, 오후에는 반차를 써야 한다.
오는 금요일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조합사무실로 출근해 미뤄진 조합 업무를 처리하며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인용 취소소송 자료를 다시 들여다봤다.


오늘은 우리가 인정받은 두 건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회사가 고등법원에 항소한 사건의 재판이 있는 날이다.

재판이 있는 날은 늘 힘들다.

회사 측 변호사는 기사 삭제라는 본질 대신 위원장을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고소했으니 그 결과를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이미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된 사안임에도 본질은 흐려지고 시간만 흘러간다.


노동조합의 시간과 재원은 회사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우리는 연차를 쓰고 조합비로 비용을 감당한다.

회사는 업무시간과 회사 비용이다.


노사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법원에서는 그 기울기가 거의 수직절벽에 가깝다.

결국 회사 요청으로 세 번째 변론기일은 4월 1일로 잡혔다.
답답하지만 또 한 번 연차를 써야 하고, 또 한 번 서면을 준비해야 한다.


노사 상생을 말하면서 간극을 좁히고 있지만 소송이 이어지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1월 22일, 다시 늘어나는 동지들

이번 주 이동사무실은 서인천공장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부위원장님, 사무국장님과 함께라 마음이 든든하다.


공장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조합원 동지들, 비조합원 동료들도 만났다.
점심시간에는 조합 가입에 대한 안내도 하고 고충과 민원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조합원 동지 두 명이 생겼다.
지난주 한 명, 이번 주 두 명.


그동안 버텨준 동지들이 있었기에 이제야 다시 숫자가 늘어나는 전환점이 찾아온 것 같다.
2026년 우리 노동조합의 시작이 좋다!

1월 23일, 끝나긴 하는 걸까?

수요일에 고등법원을 다녀왔는데 금요일에 다시 왔다.
이번에는 우리가 신청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던 다섯 건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판결이다.

최초 우리가 노동위원회에 항소해서 행정법원으로부터

노사협의회 과반노조 확인을 일대일 대면 방식만 고집한 행위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됐다.


하지만 회사 측은 고등법원에 항소했고 이번기일에 조합원 명부의 신빙성을 문제 삼고 있다.

결국 이 재판도 4월 초로 세 번째 변론기일이 잡혔다.
진심으로 노동법원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2023년에 시작된 싸움이 2026년이 되도록 이어지고 있다.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 이 시간 자체가 너무 길다.

1월 24일, 머리를 자르며

아들과 함께 미용실에 갔다.
커트를 하며 56일 만에 왔다는 말을 들었다.

머리가 가벼워지니 기분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1월 25일, 졸리다 졸려

주말에 부족한 잠을 채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졸릴까?

하루 종일 졸았다.

저녁에는 장인어른, 장모님이 오셔 가족식사를 했다.

거실에서 이야기 나누시는 어른들을 뒤로하고 혼자 방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자고도 지금도 여전히 졸리다.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25-1.jpg 레미콘 믹서트럭이 펌프카에 원활히 레미콘을 공급하게 하는 일이 현장관리다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25-2.jpg 10년 넘게 쓴 현장털모자 위로 안전모를 써야 동절기는 그나마 버틸만하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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