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단체를 찾아간 이유
※7월 27일부터 '출근 대신 기록합니다 을의 일지'는 매주 월요일 1회에서 매주 월, 화, 수요일 3회 발행으로 변경합니다. 독자여러분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상급단체 없어도 될 줄 알았다”는 착각
노동조합을 만들며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의 노동계는 양대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그리고 상급단체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조합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에 '노조'를 검색하면 나오는 건 대부분
분쟁, 파업, 귀족노조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2022년 9월, 아무것도 모른 채 노동조합을 만들면서도
“우리는 상급단체 없이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지는 데는 딱 6개월이면 충분했다.
무대응의 벽 앞에서 문을 두드리다
회사는 철저히 무시했고, 어떤 방식으로도 대응을 끌어낼 수 없었다.
그렇게 2023년 3월, 상급단체 문을 두드렸다.
지금은 내 사무실처럼 익숙한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사무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조직실장님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다른 연맹(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도 찾아가봤고
역시나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왜 노동조합은 연대하는가?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언론과 사용자가 만든 프레임에 갇혀 상급단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구나.
하지만 노조가 연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혼자서는 막막했던 문제들이, 함께일 때는 가능성이 보였다.
그렇다고 바로 연맹에 가입한 건 아니었다.
그해 4월, 우리는 “권리수호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쟁의행위를 시작했다.
공장을 멈추는 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회사로부터의 흔들림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절감했다.
연맹에 가입하다
결국 2023년 5월, 조합원 총투표로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에 가입했다.
솔직히 그때도 상급단체의 구조를 다 이해한 건 아니었다.
지금은 조금 안다.
우리 조합은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소속이고, 연맹의 상급단체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다.
우리는 화학연맹 서울지역본부 소속으로, 연맹과 지역본부에 의무금을 납부하며 활동 중이다.
위축된 나를 먼저 안아준 사람들
2023년 5월, 처음 지역본부 월례회의에 참석했을 땐 말도 제대로 못 꺼냈다.
회의실 분위기에 눌리고, 모두가 나보다 훨씬 경험 많아 보였다.
나는 초짜 위원장이었고, 눈치만 보며 앉아 있었다.
그 위축된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건 여러 선배 위원장님들이었다.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았고, “힘들죠?”라는 한마디에 울컥했다.
지역본부의 의장님과 사무국장님은 지금의 노사관계를 예견하셨지만
나는 “설마 그럴 리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틀렸다. 너무 순진하게 회사를 믿었다.
해고 이후, 연대는 삶의 버팀목이었다
2023년 9월, 나는 부당하게 해고됐다.
이유도 납득할 수 없었고, 과정도 정당하지 않았다.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을 새도 없이 연맹 동지들이 먼저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먼 길 마다않고 찾아와 함께 분노해주고,
현장에서 내 손을 꼭 잡고 “끝까지 같이 가자”고 말했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얼굴들이
언젠가부터 나의 가장 든든한 동지가 되어 있었다.
2024년 복직 투쟁이 본격화되자
함께 피켓을 들고 거리 위에 섰고
연맹은 조합 사무실이 없던 내게 그들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사무처 동지들은 매번 내 소식을 먼저 궁금해했고
연맹 위원장님은 매 순간 함께 해답을 고민해주셨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함께 버텨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이 말해준다.
연대는 조직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힘이라는 것을.
연맹이 막아준 공백
우리 조합은 전국 곳곳에 사업장이 흩어져 있다.
초기에는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조합원이 대부분이었고
현장마다 조직 상황이 달라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점을 회사는 교묘하게 파고들었고, 분열과 고립을 유도했다.
그 틈을 연맹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회사의 분열전략에 맞서 전국을 다니며 조합원들을 만나러 다닐때
결속을 다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원했다.
연맹은 그렇게 우리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2025년 4월, 연맹이 주도해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6월, 단체협약에 따라 정식 사무실을 마련하면서 연맹 사무실에서의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지금도 함께 싸우는 사람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지금도 연맹은 나의 복직을 위해 함께 싸우고 있다.
“이젠 따로 있지 말고 매주 함께하자”며
정기적으로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현황을 정리하고
지속적인 대응을 논의하는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지역본부 위원장님들은 늘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나를 지탱해주셨고,
필요한 순간마다 현장에 함께해주시며 힘이 되어주셨다.
연맹 위원장님과 사무처 동지들은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항상 옆에서 지켜보고, 이끌어주고, 묵묵히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조합원 동지들의 지지와 연대,
끈끈한 결속과 응원이 더해지며
지금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 싸움을 함께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말할 차례
이제는 우리가 말할 차례다.
우리는 안다.
상급단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라는 걸.
연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단체협약도, 사무실도, 싸움도 없었을 것이다.
그 손을 잡지 않았다면, 버틸 수 없었고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노동조합에 씌워진 편견과, 복직을 외면하는 사용자와 고립을 강요하는 현실과 맞서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증명하고 있다.
연대는 외부의 도움이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자에게 건네는 가장 강한 힘이라는 것을.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