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장에 모였다면 달랐을까?
서로의 얼굴도, 존재도 몰랐던 시작
노동조합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흩어져 있었다.
사무실과 공장은 서울 2개, 경기도 18개, 강원도 1개, 충청도 3개, 전라도 3개, 경상도 1개.
본사를 포함한 전국의 사무실과 공장에서 조합가입신청서가 접수되었다.
조합원들끼리 얼굴을 모르는 건 기본이었다.
조합 가입 사실은 비밀에 부쳐야 했고,
그래서 서로가 조합원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일했다.
그 무렵, 회사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4~5개 공장을 하나로 묶는 '권역제'라는 조직개편을 강행했다.
누가 왜 기획했는지도 모른 채, 갑자기 업무가 몇 배로 늘어났고,
현장은 그야말로 혼란과 혼돈 그 자체였다.
그래서 2022년, 우리는 이 조건에서 노동조합의 깃발을 세웠다.
그때는 몰랐다.
이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회사가 그 취약함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를.
“회사의 방침”이라는 만능주문
공장은 매출을 책임지는 조직이다.
당연히 권역장, 총괄부장, 공장장들은 회사 입장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을 조직하던 초창기, 공장 책임자들은 겉으로는 중립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조직적인 회유와 압박에 앞장섰다.
“회사의 방침입니다.”
이 한마디는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만능주문이었고,
그 주문 아래 형·동생 하던 사이였던 책임자들과 팀장들조차
비공식적 ‘노조 흔들기’의 실행자가 되어버렸다.
전국을 돌며 공장별로 지부장을 세우고 단체행동을 시작하자,
회사의 대응은 더욱 노골적이고 집요해졌다.
조용히 탈퇴하는 이들이 생겼고,
“조합비를 내지 않으면 자동 탈퇴된다”는 낭설도 퍼졌다.
한때 응원하던 회사간부들조차
회사의 시선 한 번에 우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한 공장에 모여 있었다면
그때 생각했다.
한 공장에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면 어땠을까.
비공식적인 협박이 들어와도
옆 사람이 말려줄 수 있었을 테고,
회유 시도가 있어도 동지들의 울타리가 막아섰을 것이다.
현대차, 포스코처럼 노동조합이 한 공장에 밀집된 구조였다면
싸움의 방식도, 양상도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흩어져 있었다.
직원이 40명 넘는 공장도 있었지만,
6~7명에 불과한 공장도 있었다.
그래서 흔들림에 약했고,
그래서 고립된 동지들이 발생했다.
혼자서 꿋꿋하게 권리수호운동을 펼치던 동지는
보이지 않는 차별 앞에서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조직개편의 실패, 그리고 침묵
결국, 권역제는 실패했다.
그러나 회사는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공장제로 다시 조직을 개편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지역은 영업조직 전체가 탈퇴했고,
어느 지역은 관리조직 전원이 탈퇴했다.
어떤 공장은 공정팀과 QM실이 몽땅 탈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역 간의 물리적 거리는
소통과 연대의 힘을 약화시키고,
온도차를 키웠다.
회사는 이 분산구조를 알고 있었고,
그 구조를 무기로 삼았다.
연결을 위한 유일한 방법, 이동사무실
그래도 우리는 버텼다.
흩어져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고,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 연결의 전략은,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동사무실’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았다.
매주 몇 군데씩 공장을 방문했다.
복직 전에는 출근길 공장 입구에서 기다렸고,
고용노동부의 행정지도로 출입이 가능해진 이후에는
점심시간 회사 식당에서 조합원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은,
업무 시작 전부터 공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모든 동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잠깐이라도 대면하여 이야기하고, 상황을 전달했다.
“그렇게 효과 있냐고요?”
그렇다. 그게 핵심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공장에 그렇게 다니는 게 정말 효과가 있냐”고.
그렇다.
전국을 도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렇게 쌓인 네트워크는
어설픈 단톡방보다, 어떤 회의보다 훨씬 단단하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조합원들과
이동사무실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고,
연결되지 않던 공장들이
‘노동조합’이라는 끈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일.
그게 바로 조직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실천이다.
다음 세대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를
한 공장에 모여 있었다면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구조가 아닌 현실에서 싸웠고,
그 싸움은 다음 세대 조합원에게 새로운 교훈을 남긴다.
흩어져 있는 구조를 전제로
어떻게 조직을 만들고 유지하며 위기를 넘길 것인가.
나는 매일 실패하면서 배웠고,
그 기록을 남긴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 다른 공장에서
서로의 소식을 기다린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는
기다림이 아니라 연결이 먼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