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중입니다”라는 말이, 어느 날 내 일이 되었다
‘조정’이 서류에서 나와 현실이 되었다
조정, 결렬, 쟁의.
어느 노동법 책에도 나오는 기본 용어였지만,
나에겐 한동안 ‘현실감 없는 말’이었다.
그 단어들이 갑자기 내 앞에 현실로 던져졌다.
2023년 3월, 우리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단체교섭 조정 신청을 했다.
6개월 넘게 이어진 교섭 지연과 일방적인 회사의 거부 때문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건 단지 법적 절차가 아니었다.
회사가 얼마나 ‘대화’라는 것을 거부해왔는지를 사회에 알리는 선언이었다.
세종시 조정실에서 마주한 것
3월 20일, 제1차 조정회의가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 제2조정실에서 열렸다.
회의는 노동조합과 회사가 따로따로 불려들어가
공익위원, 사용자위원, 근로자위원과 이야기 나누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최대한 대화를 만들고 싶었다.
조정위원들에게 집중교섭을 하자고 제안했고,
교섭의 기본원칙이라도 서로 합의하자고 했다.
우리의 제안은 이랬다.
주 1회 교섭
교섭 장소는 교차 결정
근무시간 외 진행
교섭인원은 유연하게 최대 7인
집중교섭 최소 3회 보장
어느 하나 비현실적인 조건은 없었다.
노조는 근로시간 면제도 전면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단체교섭에 임하는 시간만큼은 법적으로 보장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것도 단체협약 전까지만 인정하자는 최소한의 제안이었다.
회사는 바꾸지 않았다
회사는 모든 제안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권고니까 이 자리에서 답변할 수 없다”고 미루었고,
결국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조정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2~3주 1회 교섭
장소는 회사 지정 장소
인원은 2~3인 제한
노조 편의는 단협 체결 전까지 전면 불가
회사의 입장은 ‘교섭의 형식’만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실질적 논의는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렬’이라는 두 글자가 내려졌다
3월 22일, 제2차 조정회의.
회사는 조정위원들의 거듭된 권고에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조정위원들은 “이대로는 더 이상 조정할 수 없다”며 조정중지 심판을 내렸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합법적 쟁의권’을 갖게 됐다.
결렬이라는 말이 내려진 순간,
쟁의라는 단어도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단 한 번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처음 제출한 단체교섭 요구안은 그저 존중받지 못했던 시간과 마음을 모두 모아 적어낸 목록이었다.
모두 들어달라는 뜻이 아니라, 그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말해보지 못한 것들을 담은 것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회사가 노동조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요구부터 꺼냈다.
실질적 비용이 들어가는 조항보다, 교섭권 인정과 노동조합의 존재를 받아들이라는 말을 먼저 했다.
그러나 회사는 단체협약 체결 전에는 어떤 편의도 제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단체협약조차, 진지하게 협상한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상생을 말했지만, 상생의 전제조건인 대화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시도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조정에 들어갔고, 결국 결렬을 마주하게 되었다.
조정이 성립되려면, 적어도 대화할 자세는 있어야 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는 싸움을 붙이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법은 조정기간 동안 사용자가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도록 유도하고,
노사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제도를 설계해두었다.
우리가 직접 겪어보니, 조정이 성립되려면 그 최소한의 조건이 있었다.
첫째, 교섭에 임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했다.
형식만 갖춘 회의나 의무적으로 앉아 있는 자리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를 서로 확인하고
‘무엇부터 해결할 것인지’를 논의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했다.
우리는 그걸 가졌고, 회사는 그러지 않았다.
둘째, 가장 기본적인 교섭의 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교섭을 할 것인가.
노조는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교차 진행과 유연한 인원 구성 등
현실적인 교섭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회사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단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셋째, 조정위원회의 권고에 대한 ‘존중’이 필요했다.
우리는 권고를 받아들였지만, 회사는 매번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하며
모든 답변을 뒤로 미뤘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노동부 산하 기관이자 국가의 중립적 조정기구다.
그 권고조차 무시한다면, 무엇을 근거로 타협하겠다는 것인가.
이 세 가지가 하나라도 없으면 조정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조정회의실에서 아주 분명하게 확인했다.
조정은 협상의 공간이다.
그런데 회사는 처음부터 단협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줄 수 없다고 선언했고,
교섭안을 검토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조정이 아니라 시간끌기였고, 조정중지는 그 결과였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시도한 쪽이 누구였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조정은 실패였지만, 진실은 남았다
2025년 지금,
당시 조정 과정을 되돌아보면 한 가지는 분명하게 남는다.
노동조합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제안을 하며 끝까지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
그리고 회사는 그 모든 제안을 거부했고, 교섭을 형식적 의무로만 받아들였다는 것.
그 조정 중지 결정은
노조가 공격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회사가 더 이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증명이었다.
쟁의란, 싸움이 아니라 응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조정이 결렬되었다고 해서 곧장 싸움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후에도 수차례 교섭을 제안했고,
쟁의행위는 ‘대화의 마지막 문이 닫혔을 때만 사용하는 수단’으로 여겨왔다.
노동조합의 쟁의는 권리의 표출이자,
회사가 외면한 책임을 다시 묻는 방법이었다.
조정, 결렬, 쟁의
이 단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왔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삶을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단어들을
두려움 없이, 정당하게,
조합원들과 함께 맞이하고 있다.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