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회사 사람인데, 왜 법인이 다르면 남입니까

노조법 2·3조 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by 기록하는노동자


내가 본 것들, 내가 겪은 것들

나는 2011년 1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유진기업 홍보팀에 있었다.
건자재 홍보도 했지만, 주 업무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래서 누가, 어디서, 누구를 관리했는지 너무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23개 레미콘 공장과 2개의 아스콘 공장, 3곳의 골재채취장.
그중 일부는 ‘이순산업’, ‘당진기업’, ‘현대개발’, ‘남부산업’, ‘지구레미콘’이라는 법인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저 동두천공장, 남양주공장, 당진공장, K광주공장, 김해공장, 수원아스콘공장, 지구공장으로 불렸다.

인사발령은 유진기업에서 일괄로 났다.
법인이 달라진다는 전적동의서?

써본 적 없다.
회사에서 시키면 그냥 어느 공장으로 가는 거였다.
모범사원 여행도, 승진자 교육도, 장기근속 표창도 전 법인 통합으로 진행됐다.
홍보자료조차 그렇게 만들었다. “지구공장”, “남양주공장”, “김해공장”.


노조가 생기자 달라진 말투, 달라진 서류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기고, 교섭을 요구하자
회사는 그제야 슬그머니 법인을 꺼내 들었다.

우리가 교섭을 요구했을 때
회사는 유진기업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공장에 교섭 사실 확인 공고문을 붙였다.
우리는 당연히 “같은 회사니까 전부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뒤늦게 “법인이 다르다”며 교섭을 거부했다.

그리고 갑자기 인사발령 공문에 법인명을 구분해서 표기하기 시작했다.
교섭에 나온 노조대응팀 과장은 자기는 근무도 안 해본 공장을 가리키며
“거긴 우리 회사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코웃음이 나왔다.


말로는 남, 실상은 우리 직원

우리 부위원장 중 한 명은 본래 유진기업 소속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그를 현대개발이라는 법인명의 공장으로 보내고, 숙소생활을 지시했다.

물론, 전적 확인서 같은 건 없었다.

우리가 따지자 회사는 “법인이 다르니까”라며 책임을 피했다.


우리는 증거로 싸웠다

우리는 노동위원회에 갔다.
수십 개의 증거를 제출했다.

법인이 다른 영업사원이 철근판매에 유진기업 명의로 주문서를 쓰고,

회계팀은 유진 본사에서 모든 계열사 실적을 정리하고,

인사평가, 종합검진 안내, 조직개편은 통합 문서로 나왔고,

해당 법인공장장은 유진 명함을 들고 다녔다.

그런데도 노동위원회는 서류상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행정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낸 증거에 대해선 거의 언급조차 없이
“이사회 회의록과 별도 사업자”만 보고 실질적 분리를 인정했다.

우리는 핵심 증거 몇 개는 차마 못 냈다.
회사는 문서의 출처에 대해 분명 추적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낸 증거만으로도 법인격 부인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결국 인정받지 못했다.

“법인이 다르면 남의 직원”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권리수호운동’의 이름으로 준법근무를 시작했을 때,
법인명이 다르다던 그 공장의 공장장들이
“나는 이 공장의 대표이사다”라며 나섰다.

준법근무는 불법파업이라며, 경고장을 발부하고
손해배상청구까지 하겠다며 노골적인 압박을 가했다.

노동조합은 불법이라고 몰아가고,
법인은 다르다며 책임은 회피하고,

말이 바뀌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동지들은 흔들렸다.
압박은 컸고, 위협은 현실이었으며, 몇몇은 결국 조합을 떠났다.


그래서 필요한 게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우리는 이때 절감했다.
지금의 노동조합법은 ‘형식적인 사업장 분리’만으로
사용자의 책임을 피해갈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것.
회사 입장에서 노동조합이 생길 것 같으면
법인을 쪼개면 그만이다.

심지어 인사도 지시도, 평가도, 홍보도 본사에서 하면서도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국회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이 법은 공표되지 못했다. 노동자를 탄압하던 이름도 꺼내기 싫은 사람에 의해...


제2조 개정안 – 사용자 정의의 현실화

기존 법은 ‘사용자’를 형식상 근로계약 당사자로만 한정했다.
그러다 보니 본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도
“계약은 다른 법인과 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법상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이에 개정안은 다음과 같은 단서조항을 신설했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

이는 대법원 판례에서 인정한 ‘실질적 사용자’ 개념을 법 조문에 명문화한 것으로,
원청 또는 본사의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경우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제3조 개정안 – 손해배상제 남용 방지

현재 법은 단체교섭이나 파업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그 손해에 대해 노동조합원 전원이 연대책임을 지도록 만든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손해배상 소송을
노조 탈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해왔다.

개정안은 다음과 같이 보완했다

② 법원은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경우,

손해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

③ 신원보증인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제는 손해를 누가 얼마나 유발했는지 따져 각자 책임을 져야 하며,
무차별적인 손배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법만 있었어도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증명 싸움에 시간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사용자성을 인정받고,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같은 회사의 이름아래, 같은 보고를 하고,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그런데 법인이 다르다고 "남의 직원인가?"

그건 우리 노동조합이 잘못된 게 아니라, 법이 틀린거다.

노조법 2, 3조 개정이 빠를지

우리 노동조합이 항소한 고등법원 판결이 빠를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노동조합을 떠나

노조법 2·3조 개정,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겪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교섭사실요구.jpg

같은 게시판, 같은 연도에 붙은 두 장의 공고문.
위에는 “유진기업 대표이사” 명의의 교섭공고,
아래에는 “당진기업 주식회사” 명의의 문서.

평소에는 같은 회사처럼 운영하면서,
노동조합이 생기자 법인을 나누어 책임을 피합니다.

이 사진 한 장이, 왜 노조법 2·3조 개정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말해줍니다.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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