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교섭, 첫 거절, 아찔한 추억

노동조합을 '상대'가 아닌 '적'으로 본 회사

by 기록하는노동자
노동조합의 요청, 그리고 갑작스러운 돌변

노동조합 설립 이후, 우리는 첫 상견례를 요청하며 대화를 시작하려 했다.
회사는 처음엔 “기다려 달라”는 말로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했지만,

곧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노조 사무실을 여의도 본사에 요청한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조합 설립 한 달여 만에 회사는 공문으로 냉정하게 이를 거절했다.

“귀 노동조합은 위 공문 등에서 본사 주소를 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으나, 이는 당사의 업무공간이지 귀 노동조합이 임대해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므로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현재는 창구단일화 절차 중으로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았고, 본점 소재지도 아니기 때문에 요청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첫 상견례, 하루 전날 무기한 연기

2022년 9월 23일 예정되었던 경영진과의 첫 상견례는
단 하루 전날, 퇴근 무렵 회사의 공문 한 장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단체협약이 체결된 지 2개월여가 지난 2025년 6월 17일 현재까지도
그 첫 만남은 무산된 채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출입 저지, 유튜브 영상, 그리고 형사고소

10월 28일, 첫 단체교섭을 위해 간부들이 연차를 내고 여의도 본사로 향했다.
하지만 회사는 건물 관리팀에 노조 간부들의 출입을 차단하라고 요청했고, 우리는 입구에서 가로막혔다.

당시의 출입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통화 녹음을 유튜브에 게시했다.
이 기록은 이듬해 회사가 위원장을 형사고소하고 징계해고하는 사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노조 간부들은 본사에 노조업무로 방문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있다.


단체교섭은 ‘근무시간 외’, 장소는 ‘본사가 아닌 본점’

회사는 지속적으로 근무시간 외인 오후 5시, 부천공장에서 실무교섭을 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여의도 본사에서 출입을 저지당했던 그날,
회사는 퇴근 시간이 되자 부천에서 교섭을 진행하겠다고 나섰다.

그 순간부터 노동조합은 회사와 ‘협의’가 아닌 ‘회피와 거절’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벽 5시 교섭 종료, 그리고 ‘감금·협박’ 주장

2022년 11월 8일, 부천공장에서 노동조합이 모든 요구를 양보하고서야 첫 실무교섭이 열렸다.
회사 측은 과장과 대리 단 두 명만을 참석시켰고,
노동조합이 제출한 기본협약안은 회사의 입장이 아니면 대안을 제시해도 모두 거절했다.

교섭이 공회전하자, 회사 측 과장이

“끝까지 해보자”고 도발했다.

노조 간부들은 밤을 새워서라도, 업무시간을 피해 교섭을 이어가자고 결의했다.
하지만 교섭 중단을 선언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던 회사는

결국 새벽 5시가 넘어서야 교섭 중단을 선언하고 퇴장했다.

며칠 후, 회사는 공문을 통해

“노동조합이 사회권을 남용해 교섭위원을 감금하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복사골문화센터에서의 '제한된 교섭'

그날 이후 교섭은 항상 문 닫는 시간이 정해진 외부 회의실에서만 진행되었다.
회사 측이 지정한 장소는 부천공장에서 20분 거리의 복사골문화센터 회의실이었다.
근무시간 이후, 저녁 9시까지만 교섭이 가능했다.

다른 시간이나 장소를 제안하면, 회사는 교섭 자체를 거부했다.

이러한 제한은 연맹에 위임한 교섭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회사는 “근로시간 내 교섭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조금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아예 교섭을 열지 않았다.


이어지는 교섭 거부, 언론활동 방해, 조합원 파악 시도

회사는 교섭 일정을 지연하거나, 근로시간 외 특정 장소에서만의 교섭을 고수했으며,
일부 공장에 대해서는 별도 법인이라는 이유로 교섭 요구 자체를 수차례 거절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이러한 일련의 태도를 실질적인 교섭 거부로 판단하고,
2022년 11월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이후 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에서는 형식적 교섭은 유지되었다는 이유로 교섭해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행정법원 판결문에는 같은 방식의 교섭이 반복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이 담겼다.
당시 조합은 사용자 측의 반복된 대응을 사실상 '교섭 회피'로 받아들였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첫 깨달음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은 단 하나,

"아찔함" 이었다.

상식이라 믿었던 노동관계의 원칙은 무너졌고,

회사는 더 이상 대화 가능한 사용자가 아니었다.

노조를 협상의 상대가 아닌, 무력화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싸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사 합의를 전제로 설계돼 있다.
헌법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실제 법은 노동조합의 자율운영은 허용하면서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체크오프, 노조 사무실 제공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권리는 사용자와의 합의 없이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요청했지만,
그 순간조차 회사는 오히려 노조를 더 탄압했고,
그 모든 과정은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이 오히려 ‘탄압의 근거’가 되는 아이러니로 돌아왔다.


결론: 헌법은 말하지만, 현실은 침묵한다

헌법은 노동3권을 가치있게 평가한다.
그러나 현실의 법과 제도는 그 권리를 행사하기에는 너무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이었다.

이 싸움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싸움 한복판에 서 있다.

특히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 건,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발의된 시점에 통과되었더라면,
일부 공장에 대해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교섭 요구조차 거절당했던 상황이
법적으로 정면 대응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개정안은 사용자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미뤄졌고, 우리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서 싸우고 있다.


2022년 10월 28일 여의도 본사를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막힌 노동조합 간부들


※관련 동영상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가능합니다.

https://youtu.be/TxkX_CXSaSw?list=PLGLx0fS_QRaOmne200I9XcHFSIR5wB35g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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