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이렇게 준비하는 게 맞을까?
검색하면 나오는 것, 하지만 빠져있는 것
‘노동조합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색창에 이렇게 입력해 보면, 꽤 많은 정보가 나온다. 블로그, 유튜브, 상급단체 홈페이지마다 빠짐없이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조언이 적혀 있다.
단체설립 신고서, 규약, 임원명부 등 법적으로 필요한 서류 양식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있어 절차보다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흔들리지 않을 동지 한 명’이다.
한 잔의 맥주, 시작된 결심
그날은 평범한 하루의 끝이었다.
일을 마치고 몇몇 후배들과 맥주를 나누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회사에도 노동조합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노동조합 만들면, 배신 안 하고 끝까지 함께할 거냐?”
술기운이 남아 있던 자리였지만, 모두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맨정신으로 몇 번이나 다시 물었다. 대답은 늘 같았다.
“예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도, 그때 약속한 친구들은 여전히 조합원으로 남아 있다.
물론 두 명은 퇴사하며 조합원의 자격을 상실했지만, 나머지는 노동조합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고 있다.
노동조합 설립, 가장 큰 산은 가족
동지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 설립에서 가장 넘기 힘든 산은, 바로 가족의 동의다.
아내는 언제나 나를 걱정하면서도 응원해주는 사람이었다.
사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노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이야기는 자주 했었다.
하지만 내가 진지하게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녀의 표정엔 걱정이 먼저 떠올랐다.
말을 꺼냈다가 접고, 또 꺼냈다가 멈추는 사이, 나는 코로나에 걸려 집에 격리되었다.
열이 펄펄 끓고 기침이 멈추지 않던 그때에도 회사는 엑셀 파일을 만들고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모니터 앞에 앉아 있어야 했고, 가족들도 모두 고열에 시달렸다.
아내와 아이가 신음할 때, 나는 물수건도 제때 갈아주지 못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아내의 마음속에도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지나치게 높아진 업무 강도, 밤낮 없는 회의와 접대, 지쳐가는 내 모습을 보며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노동조합을 만들되, 제발 해고당하거나 위험한 일은 없게 해줘.”
나는 그렇게 약속했고, 그 약속은 설립 1년 만에 부당해고로 깨졌다.
그럼에도 아내는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고 지금은 오히려, 노동조합 활동을 가장 강하게 응원해주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다.
절차보다 중요한 건 ‘현실을 아는 전문가’
이제야 절차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면 법적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노동법은 낯설고 어렵다.
인터넷에 있는 표준안은 우리 회사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상급단체 없이도 스스로 노동조합을 운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회사와 대화하며 상생하겠다는 원대한 꿈도 있었다.
그만큼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이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야기의 뒷부분은 다음에 소개하겠다.)
노동조합 설립을 혼자 준비하는 것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결국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2022년 8월, 여름휴가를 내고 노무사 사무실을 찾았다.
노무사에게 설립 절차와 규약 구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을 들으며,
우리 회사에 맞는 방식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혼자 준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보안을 위해 모든 준비는 철저히 혼자 해야 했다.
회사에는 보이지 않는 눈과 귀가 있고 직원들을 짓누르는 무언의 압박이 존재한다.
어느 누구도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회사에 대한 배신, 부정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가까운 동료에게도 믿었던 선배에게도 조심스러웠다.
준비를 시작한 뒤로는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도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갔다.
지금생각해보면 지나친 걱정이었을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두려웠다.
작은 실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었기에 하나하나 절차를 되짚고 또 되짚으며
노동조합이란 이름을 조심스럽게 세워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9월 3일, 우리는 설립총회를 열었다.
기억 속의 그 날, 8명의 시작
처음엔 30여 명이 설립총회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일 아침, “갈 수 없다”는 연락이 잇따랐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그들도 여전히 노동조합의 동지이며,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있다.
그은 오지 못한 이유가 용기의 부족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날 설립총회에 실제로 참석한 사람은 단 8명. 나를 포함해서였다.
손발이 떨릴 정도로 긴장됐고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웠지만
우리는 서로 눈빛을 맞추고 말 없이 '해보자'는 결의를 약속했다.
그날의 시각, 감정, 공기의 온도까지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날의 뜨거운 결단이 오늘의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참석자가 적다고 주저하지 말자.
법적으로는 2명 이상만 있어도 설립총회는 성립된다.
그리고 그 '2명'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숫자다.
노동조합 설립, 첫걸음은 사람이다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건 단순히 서류를 내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음 두 가지다.
흔들리지 않을 동지 한 명을 찾는 일
가장 소중한 사람, 가족과의 합의
모든 것이 준비된 후에야 절차가 의미를 갖는다.
나는 그렇게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지금도 지켜가고 있다.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