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를 만들고 회사로 부터 받은 선물, 해고
첫 출근과 마지막 통보
2010년 1월 4일 나는 유진기업에 첫 출근했다. 그리고 2023년 9월 8일 회사로부터 징계해고를 통보받았다. 29세부터 42세까지 4,995일간 일한 끝이었다. 회사는 나의 해고 사유를 ‘개인 비위행위’라고 주장했지만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모두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서울행정법원에 항소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노조위원장 해고’가 이제는 내 이야기가 되었다.
해고 사유? 노조 때문이 아니라고?
해고의 주된 사유는 내가 2011년부터 2021년까지 홍보팀에 근무하던 당시, 계열사 직원들에게 폭언과 갑질을 했다는 것이었다. 인사위원회에 참석해 사실관계를 소명했지만 결정은 이미 내려진 듯 보였다. 노동조합을 만든 지 꼭 1년 만에 해고를 당한 것이다. 당황스럽고 억울했지만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응하고자 했다.
“노조위원장을 해고하면 불법 아니야?” 지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해고가 ‘노조 활동’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해고된 본인과 조합이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부당해고는 인정되지만 부당노동행위는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 부당해고는 인정되어도, 부당노동행위는 별개로 판단된다.
노동위원회는 해고가 「근로기준법」 제23조에 위반되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루어진 경우, 이를 '부당해고'로 판단한다. 그러나 해당 해고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1호(지배·개입), 제4호(불이익취급) 등에 해당하는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해고가 사용자의 반노동조합적 의도에 기인했다는 점을 노동자 측이 입증해야 한다. 즉,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는 별개의 요건과 증명책임이 적용되며, 동일한 해고에 대해서도 하나만 인정되고 다른 하나는 기각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것이 노동위원회 운영의 구조적 한계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법
노동위원회에 가게 되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변호사나 노무사를 대동하게 되고 이는 곧 비용의 문제가 된다.
돈싸움이 시작되면 자원이 부족한 노동조합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법은 ‘분쟁을 제기할 기회’는 주지만, 그 운동장의 기울기를 바로잡아주지는 않는다.
2020년 노동위원회 통계 기준
부당해고 인정률 : 34.0%
차별시정 인정률 : 40.3%
부당노동행위 인정률 : 단 7.4%
해고, 차별보다 ‘노조 탄압’이라는 이름을 인정받는 것 자체가 가장 어렵다.
이런 구조 속에서 노동조합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실상 끝없는 오르막 싸움이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회사측이 이를 불복하면 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진다.
이래서 노동사건은 3심제가 아닌 5심제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한때는 정치권에서 노동전문법원을 따로 만들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고단하다.
대기업일수록 대형 로펌을 앞세워 시간을 끌고 노동조합은 그 사이 체력과 의지를 소모당한다.
물론 우리 회사도 기대에 격하게 부응하고 있다.
나는 2023년 12월과 2024년 4월,
노동위원회에서 두 차례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2025년 5월 현재,
서울행정법원에서 네 번째 변론기일을 마친 상태다.
원래는 3월 변론이 종결될 예정이었으나 회사 측 요청으로 증인신문 절차가 추가되었다.
그런데 변론 전주에 회사측이 증인 요청을 전면 철회했다.
그 사이 흘러간 두 달의 시간, 노동조합 입장에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다.
이제, 2025년 6월 26일 행정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회사는 상 줬던 직원을 왜 해고했나
노동조합을 만들기 1년 전 나는 회사로부터 ‘우수영업사원’이라는 상도 받은 적 있다. 실적도 좋았고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그런 내가, 노조를 만든 지 1년 만에 회사는 일방적 인사위원회 결정을 통해 해고됐다. 나의 소명은 그 어느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판단은 ‘해고 사유가 해고에 이를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과의 관련성은 인정되지 않아 부당노동행위로는 판정받지 못했다. 해고는 부당한데 부당노동행위는 아니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 하지만 이것이 현재 법의 현실이었다.
노조, 하지 말라는 사회의 목소리
노조를 만들기 전,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다. 대부분은 만류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한다”, “회사가 널 가만히 둘 것 같냐?”, “너 부자냐? 가족은 어떻게 책임질 건데?”
요약하자면 모두가 “하지 마라, 노동조합”이라는 말로 귀결됐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회사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홍보팀에서 오너가와 경영진을 9년여간 따라 다니며 생긴 믿음이었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다를 줄 알았다
나는 9년 가까이 홍보팀에서 일하며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래서 설마 해고까지는 당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노조가 설립된 2022년 9월엔 대화도 꽤 잘 이뤄졌고 표면적인 탄압도 없었다. 천천히 대화를 통해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세상은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인생은 실전이다. 멍청아.”
현실은 냉정하고, 해고는 살인이다
회사 안에서 ‘아니오’를 말하면 언제든 미움을 받고 잘려도 되는 사람이 된다.
회사에서 해고는 통보지만 노동자에겐 살인선고다.
나는 통보 받는 순간 직전까지 어떻게든 버텨보려 법을 찾아보고 판례를 뒤졌지만
현실은 이미 나를 잘라낸 뒤였다.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눈앞은 아득했고 심장은 죄책감과 분노로 뛸 뿐이었다.
외벌이에, 월세살이. 한 달만 수입이 끊겨도 카드값, 교육비, 대출이 밀린다.
40대 초반의 가장이자 해고자가 된다는 건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게 아니라 사람의 존엄과 가족의 미래가 동시에 무너지는 일이었다.
매일 “조합원 몇 명 됐어?”라며 묻던 아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당신을 믿는다”고 말하던 아내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해고 통보를 받은 그 금요일 오후
나는 주차장 한켠에 차를 세우고 조용히 울었다.
그날, 내 뜨겁고 시큼했던 젊은 날의 유진 인생은 송곳처럼 잘려 나갔다.
눈물 뒤에 온 문자 한 통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와 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고 소식을 들은 조합원 동지들이 보내준 응원의 말들이었다.
나는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나에겐 300명이 넘는 조합원 동지들이 있다.
※당시 조합원 수는 300명이 넘었다. 지금은 270명이다.
그리고 함께 싸우는 간부들이 있다.
회사는 나를 강제로 밀어냈지만, 나는 반드시 돌아가 이 싸움을 끝낼 것이다.
해고된 지 1년 8개월, 그래도 노동조합은 살아 있다
지금도 우리 조합은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
비록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우리는 회사에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해고 상태지만,
조합원들의 지지 속에 변함없이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 “하지 마라”고 걱정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나를, 그리고 우리의 싸움을 응원해주고 있다.
노동조합은 살아 있고,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나 하나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해고는 내 모든 것을 앗아가려 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기록입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모든 목소리와 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