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노사관계였다면
정상적인 교섭의 풍경을 상상하다
정상적인 노사관계였다면 임금교섭은 어땠을까.
회의실의 온도는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했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자료를 펼쳐놓고, 회사는 경영 상황을 설명하고,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생활수준과 물가상승률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 정도면 서로 납득할 수 있겠네요.”
그 한마디로 긴 회의가 마무리되고,
다음 해의 임금표가 조용히 갱신되는 것,
그게 내가 꿈꾸는 ‘정상적인 교섭’의 장면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교섭은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다.
우리는 늘 변두리에 서 있었다.
상견례조차 근무시간 이후에 회사의 문이 닫힌 뒤에야 겨우 열렸다.
회의실을 빌리는 것도 시간 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모두 싸움이었다.
단체협약 이후, 처음 맞이한 새로운 무대
이번 임금교섭은 조금 달랐다.
‘단체협약 체결 이후 첫 임금교섭’이었다.
그 말엔 단순한 절차 이상의 무게가 있었다.
우리가 법적으로 인정받은 교섭권을 손에 쥐고
다시 정식 테이블에 앉은 첫 자리였기 때문이다.
서로의 시선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엔 이전보다 말을 조금 더 들을 수 있었다.
회사도, 노동조합도,
“이번엔 다르게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말보다 컸던 ‘식사의 온도’
공회전하던 교섭이 이어지다가 다섯번째 교섭이 끝난 뒤
노사 대표가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노조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식사는 어쩌면 그 어떤 교섭보다 길고, 의미 깊었다.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공장 분위기는 좀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대화 같았지만,
그 안엔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는 온기가 있었다.
그날의 밥상은 작은 사건이었지만
그 온기 하나로 긴 싸움의 피로가 조금 녹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바로 대화의 시작이 아닐까.’
싸움보다 어려운 대화의 복원
사실 싸움은 쉽다.
싸움은 목소리를 높이면 되고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면 된다.
하지만 대화는 다르다.
대화는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고
그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마다 다시 시도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화 대신 공문을 주고받았다.
각자 법을 인용했고 원칙을 내세웠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입장’은 정확해졌지만 ‘서로의 마음’은 멀어졌다.
다섯번째 교섭이 의미 있었던 건
바로 그 거리의 일부가 좁혀졌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지만
그날의 식사와 그날의 대화는
‘정상’으로 가는 첫 걸음이었다.
다음을 준비하며
돌이켜보면,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완전한 신뢰는 아니지만 불신만 가득했던 시절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나는 회의 후 생각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언젠가, 정말로 우리가 정상적인 교섭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게 다섯번째 교섭이 남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다음 편 예고
조합원 긴급총회 투표가 끝났다.
나는 임금교섭에 대한 위임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진짜 고민이 시작된다.
조건을 걸 것인가, 믿고 맡길 것인가.
둘 다 옳고, 둘 다 두렵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