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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우리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3년을 돌아본 반성과, 다시 시작해야 할 대화

by 기록하는노동자
회사의 눈에 비친 우리

지난 3년, 회사가 우리를 어떻게 봤을까 곱씹어본다.
아마도 회사 눈에는 우리는 “끝없이 요구만 하는 집단”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자료를 내라, 인상안을 내라, 책임져라 ― 우리는 늘 추궁하는 쪽이었고,
회사는 늘 “경영권이다, 경영상 비밀이다, 검토 중이다”라는 말로 막아섰다.


그들에게 우리는 부담이었고,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냉정히 말하면, 우리의 행동이 항상 지혜로웠던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즉각적인 반격에만 몰두하느라, 왜 회사가 그런 말을 하는지 깊이 따져보지 못했다.

만약 그때, 우리가 달랐다면

“자료가 없다”는 말 뒤에는 혹시 책임을 떠안기 싫은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검토 중이다”라는 말에는 내부에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하는 무력감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회피라고만 해석했다. 벽은 높아지고, 언어는 더 멀어졌다.


만약 그때 우리가 말을 더 곱씹고, 의미를 확인했더라면 어땠을까.
주장은 그대로 지키되, 언어의 틈새를 읽어내는 시도가 있었다면 싸움의 모양은 달라졌을 것이다.
상생은 문서나 법조문이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몸짓에서 시작되었을 테니까.

대화가 필요한 이유

대화가 없을 때 갈등은 커지고, 결국 남는 건 소송과 싸움뿐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누구에게도 승리를 주지 않는다.
회사도, 우리도 다 상처만 남았다.


우리는 이제 안다.
대화가 문제를 곧장 풀어주진 않지만, 문제를 풀 수 있는 문을 닫지 않는다.
불일치를 확인해야 좁힐 수 있고, 좁히려는 시도에서만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래서 대화는 여전히 우리가 쥐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도구다.

뒤따라올 이들에게

우리가 처음 강대강으로 맞섰던 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서로의 말이 끝내 어긋나 있었다.
노동조합의 말과 회사의 말은 달랐고, 그 차이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후발 주자들에게 당부한다.
주장을 굽히지 말라. 그러나 상대의 언어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잃지 말라.
말이 어긋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 불일치를 알려주는 것도 먼저 걸어간 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의 자리

노동조합은 회사를 무너뜨리려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회사의 부속품으로 머무를 수도 없다.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마지막 방패이자, 동시에 회사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문제는 그 균형이다.
회사는 우리를 걸림돌로만 보려 하고, 우리는 회사를 적으로만 규정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관계를 새로 써야 한다.


노동조합은 회사의 실패를 막는 견제선이자, 회사가 살아남기 위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그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어떤 모습으로 세울 것인가는 앞으로의 우리의 숙제다.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대화는 언제나 가능하다.
우리가 교섭장에 앉는 이유, 앞으로도 자리를 지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조합의 힘은 싸움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집단일 때, 더 깊은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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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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